하루 아침에 보직 해임된 팀장들 "15년 넘게 다닌 회사인데 이럴 수가"
오너2세 서민정 담당, 경영승계 위한 '세대교체' 라는 평가도
[서울=뉴시스]이지영 기자 = ·
아모레퍼시픽그룹이 대대적인 정기 인사로 팀장들을 전면 교체해 그 배경이 주목된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이 경영 주기를 종전 1월에서 7월로 바꾸면서 단행한 첫 번째 인사로 코로나19 이후 불확실성에 발 빠르게 대응할 젊은 인재들을 전면에 세웠다는 평가다.
그러나 1970년대생 고참 팀장을 대거 팀원으로 강등시키는 파격으로 아모레퍼시픽 직원들 사이에는 "조직에 충성해봤자 이렇게 된다"는 반발 심리가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일부에선 이번 인사를 서경배 회장의 장녀인 서민정 담당(사진)의 경영 체제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고도 본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 8월1일자로 임원 인사와 함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전까지 아모레퍼시픽은 매년 연말에 조직 개편과 포상 제도를 운영했지만, 올해부터는 경영 주기를 1월에서 7월로 바꿔 조직 개편 시기도 종전 12월에서 8월로 앞당겼다.
◆고참 팀장들 대폭 물갈이, 'MZ세대' 팀장으로 세대교체
이번 인사의 핵심은 팀장들의 '세대교체'다. 급변하는 트렌드를 빠르게 읽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위해 젊은 인재들을 대거 발탁했다. 더 젊어진 대표이사 체제에 걸맞게 주요 부서 팀장들도 1980년대생 MZ세대로 대부분 물갈이 했다.
이전까지 아모레퍼시픽 팀장들은 1970년대 초·중반 출생자들이 주축을 이뤘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20명 정도의 브랜드영업·경영지원 부서 관련 팀장들을 보직 해임하고, 1980년대생 신규 팀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젊은 팀장들이 발 빠른 대응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올드한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이미지를 변신하게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조직의 중추를 맡았던 시니어 팀장들을 대거 보직에서 해임해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다는 후문이다.
팀원으로 근무하던 '담당'(팀장이하 직원을 말함)이 팀장이 되고, 팀장은 하루아침에 담당으로 격하되면서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정상적인 근무가 힘들다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담당으로 강등된 전직 팀장들은 사실상 회사로부터 '퇴직'을 강요 당한 것이라고 자평한다.
특히 담당으로 밀려난 일부 팀장들 사이에는 개인의 인사 고과나 부서 실적보다는 '나이' 때문에 팀장에서 밀려났다는 반발이 적지 않다. 당연히 시니어 팀장들 사이에서 이번 인사에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번 인사에서 아모레퍼시픽 팀장에서 물러난 A씨는 "15년 넘게 성실하게 다닌 회사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며 "팀 실적이나 인사 고과와 무관하게 1970년대생 팀장들을 보직 해임한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가"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밑에서 일했던 직원이 팀장이 되고, 팀장이 팀원이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같이 한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겠느냐"며 "그런데도 부서 이동조차 해주지 않고 한 부서에 같이 배치시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 같은 인사에 대해 "아모레퍼시픽이 사실상 시니어 팀장에게 알아서 퇴사하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분석한다. 실제 팀장 보직에서 해임된 상당수 팀장들은 아모레퍼시픽을 떠날 예정으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팀장 이하 직원들도 이번 인사가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팀원인 B씨는 "위에 팀장이 해임되고 새 팀장이 임명됐는데 아직 팀장 역량이 부족하다보니 업무가 미숙하고 부서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새 팀장과 이전 팀장이 한 부서에서 근무해 팀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팀원 C씨도 "한 두 명도 아니고 쫓겨나듯 물러난 팀장들의 사례를 보면서 아모레퍼시픽이 내가 계속 다녀야 하는 직장인가 회의감이 든다"며 "인사가 만사라는 의미를 절실히 깨닫는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20년에도 코로나19 쇼크로 창사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직원들의 근무 사기가 크게 꺾인 바 있다. 당시 사측은 권고사직 리스트를 만들어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저성과 장기 근속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면담을 요청하는 등 사실상 퇴직을 권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팀원 D씨는 "차라리 2년 전 희망퇴직 때처럼 별도로 퇴직금을 주고 희망퇴직을 권고했다면 이런 불만까진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선 아모레퍼시픽이 전형적인 오너 기업이어서 이처럼 조직 전체에 큰 충격을 주는 인사를 강행할 수 있었다고 본다.
아모레퍼시픽 직원 E씨는 "아무리 오너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는 오너 기업이라고 해도 이번 인사는 직원들의 사기는 물론 아모레퍼시픽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많게는 20년 이상 회사에 충성한 고참 팀장들을 이렇게 함부로 내쫓는 것은 다른 직원들에게도 회사에 충성할 이유가 없다는 마인드를 심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
◆오너 3세 서민정 경영 승계 위한 '사전작업' 시각도
이번 인사 배경에 대해 서경배 회장의 장녀인 서민정 담당(1991년생) 경영 체제로 가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직원 A씨는 "아무래도 서민정 담당 입장에선 1970년대생 고참 팀장들과 소통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며 "MZ세대 팀장들을 키워 서민정 담당이 경영 후계자가 되는 밑거름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고 밝혔다.
서민정 담당은 지난해 2월 아모레퍼시픽그룹 전략실에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나섰고, 현재 아모레퍼시픽 럭셔리브랜드 AP팀에서 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서민정 담당은 지난해 말 기준 이니스프리 18.18%, 에뛰드 19.5%, 에스쁘아 19.52% 지분을 각각 보유해 이들 업체에서 2대 주주에 올라있다.
아모레퍼시픽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년 전 입사한 서민정 담당을 언젠가 경영 전면에 세우려면 조직의 세대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번 인사를 계기로 서민정 담당의 사내 영향력이 더 커졌다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한편 최근 이니스프리와 에스쁘아 대표이사 교체도 사실상 서민정 경영 체제를 굳히는 인사라는 분석이다. 이니스프리는 최민정 대표를, 에스쁘아는 이연정 대표를 새롭게 선임했다. 이들은 각각 1978년생, 1979년생으로 아모레퍼시픽을 이끌 젊은 경영진으로 통한다.
증권 전문가들은 "서민정 담당이 보유한 아모레퍼시픽 지분이 없는 만큼 이들 3개 계열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서 담당이 아모레퍼시픽 지분을 확보하게 하는 방안이 다양하게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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