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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안중근 심문조서, 이순신 난중일기와 함께 내 청춘 흔들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03 15:43

수정 2022.08.03 15:48

[파이낸셜뉴스]
소설가 김훈이 3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학동네, 뉴시스
소설가 김훈이 3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을 맞아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문학동네, 뉴시스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일본인이 작성한 안중근의 심문조서가 내 젊음에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줬다. 나는 다른 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이 한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그때 생각했다."

3일 오전 11시. 하늘색 모직 셔츠, 베이지색 면 모자를 하얀(회색) 머리 위에 눌러쓴 김훈이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 등장했다. 글로만 봐왔던 그는 강직하고, 당당하고, 여전히 청년같은 이미지였으나 실제로는 시간의 풍파를 맞아 생각보다 작아 보였다. 그는 "출판사(문학동네)에 배경을 만들지 말라고 부탁을 했는데 쑥스럽게 만들어 놓고 말을 할려니 식은땀이 난다"고 운을 뗐다.
그의 뒤로 "'칼의 노래'를 넘어서는 김훈의 새로운 대표작 하얼빈"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이크를 통해 전해오는 김훈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책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자 노인의 실루엣은 세월을 비껴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김훈은 작가의 말에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썼다.

"안중근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이 일생의 과업이었나?"는 질문에 그는 "필생의 과업은 아니었다. 평생 거의 매달려 있지는 않았지만 소설을 쓰기로 생각하고 방치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 않은 숙제처럼 미루다 이번에 그 숙제를 마친 것이다.

그는 작품의 제목으로 '하얼빈에서 만나자'를 출판사에 제안했으나 출판사와 논의 끝에 '하얼빈'으로 바꾸었다. 그가 제시한 제목보다 완전무결한 완결성을 갖고 주제를 과도하게 노출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소설 '하얼빈'에 대해 그는 애초의 구상보다 분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안중근의 일대기를 영웅적으로 다룬 기존 서사와 달리 그의 소설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기간 만을 다룬다.

김훈은 "소설에서는 총 3가지 갈등 구조가 나온다. 이토와 안중근의 갈등이 첫번째다. 둘째는 문명개화와 약육강식이라는 시대적 갈등. 셋째는 안중근이라는 기독교 신자와 천주교 신부들 사이의 갈등이다. 천주교 사제들은 반쯤은 정부에 속해 있고 나머지 반은 제국주의적 현실에 속해 양다리를 걸쳤던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중근의 영웅적 면모만을 부각하거나 이토 히로부미의 악마성만 강조하는 대신 두 인간의 고뇌와 갈등,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떠밀린 이들을 덤덤하게 다뤘다고 설명했다.

"이토라는 한 인간 안에서 문명 개화라는 대의, 큰 사업(제국주의)과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성이 동시에 형성되고 존재하면서 그것을 이 세계에 실행하려고 하는 것을 묘사하려고 했다. 세계사적 흐름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이걸 한 개인성의 형성에서 다뤘다. 이 과정에서 안중근과 이토는 비극적으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것이었고, 그 장소가 하얼빈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설 속에서 안중근과 오덕순이 나눈 대화를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신바람나고 행복했던 순간은 안중근하고 오덕순이 블라디보스톡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만나가지고 안중근이 "열흘 후에 이토가 온다는데 죽이러 가자"그러니까 오덕순이 "그래 가자"고 답했다는 것이다."

두 젊은이는 만나서 이토 암살이라는 결정을 하며 '대의명분'을 따지지도, 총알이 넉넉한지도, 자금이 얼마나 있는지도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
하얼빈이라는 도시에도 가본적이 없었다. 두 명의 청춘은 그 결정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향한다.
권총 한 자루와 일곱 발의 총알,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안중근의 청춘의 단면을 엿보는 '하얼빈'행 티켓 값은 1만6000원(문학동네).

김훈 "안중근 심문조서, 이순신 난중일기와 함께 내 청춘 흔들어"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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