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반지하의 비극
10분만에 복도에 물 가득 차
집 앞 도로 싱크홀까지 생겨
경찰·소방차도 제때 접근 못해
10분만에 복도에 물 가득 차
집 앞 도로 싱크홀까지 생겨
경찰·소방차도 제때 접근 못해
■"좋은 사람이었는데… 안타까워"
비가 퍼붓던 지난 8일 오후 8시께 신림동 일대에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변을 당한 가족이 살던 반지하 집 밖에도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날 집에는 40대 발달장애인 여성 1명과 40대 여동생, 여동생의 10대 딸이 있었다. 그들은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집 안에서 문을 열 수 없던 상황이었다. 복도에 물이 가득 찬 탓이다. 주변 이웃들에 의해 신고가 이뤄진 것은 같은 날 오후 9시께였고 30~40분 후 경찰과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건물 주변에 물에 잠겨 반지하 집으로 접근이 어려웠다. 그렇게 다음날인 지난 9일 0시 26분에 세 사람은 숨진 채로 발견됐다. 가족 중 발달장애인 여성의 어머니 A씨(74)만이 검진 차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화를 피했다.
A씨 가족은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은 7년 전이다. 이들은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이웃들과도 교류가 잦았다고 한다.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주민들과 관계도 원만했다. 그런 이웃을 한순간에 잃었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슬퍼하고 있었다.
특히 같은 건물에 살던 이웃 주민 B씨는 A씨와 함께 종종 커피를 마시는 등 교류하는 사이였다고 했다. 눈가가 촉촉해진 B씨는 "장애 있는 자식을 둬서 어머니가 참 긍정적으로 사셨다. 성격이 좋았다"며 "마음이 아프기만 한 게 아니라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같은 건물 입주자 임모씨(57)도 "거기 사람이 갇혀 있는 줄 알았다면 도왔을 것인데 너무 안타깝다"며 "잠도 안 오고 미칠 것 같다"고 토로했다.
■"10분만에 물 가득 차"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사고 당일 해당 지역에는 비가 많이 와 도로에 물이 성인 허벅지까지 찼다. 해당 건물 반지하 방 창문이 다 잠길 만한 높이였다.
사고 당일 A씨의 연락을 받았다는 B씨는 "물이 10분 안에 차올라서 경찰이 출동했을 때 이미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었다. 창문으로 열려고 해도 안 열려서 소방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늦어졌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폭우 피해로 인해 이곳저곳에서 신고가 빗발치면서 관악구 내에서는 출동할 수 있는 소방차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구로구 소방차가 지원을 나가 시간이 더욱더 오래 걸렸다. 더구나 주택 앞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하면서 도로에 싱크홀이 두 개나 생겨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하다가 흙과 자갈로 메워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악재가 겹친 것이다.
같은 건물에서 이들이 살던 곳 맞은편 반지하 방에 15년 전 살았다는 주민 박모씨(60대)는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박씨는 "그때도 위험해서 그 방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 밑에 정화조가 있는데 비만 오면 넘쳤다"며 "여긴 반지하가 아니라 지하다. 다른 반지하는 계단 5~6개 내려가면 많은 건데 여긴 거의 13개나 내려가야 해 지층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폭우에 과거 박씨가 살았던 반지하 방에도 침수 피해가 있었으나 당시 인근 시장에 나와 있던 남성 입주자가 가족의 전화를 받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 방범창을 뜯어내고 가족들을 구출했다.
B씨는 "이쪽은 그래도 창문 앞쪽에 주차장으로 연결된 넓은 공간이 있어서 방범창을 뜯어냈는데 반대편 반지하 방은 공간이 없고 방범창을 안쪽에 단단히 고정해놔서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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