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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레인저가떴다] 방태산 자락 꼭꼭 숨은 계곡…20㎞ 물길 따라 夏~夏~夏

뉴스1

입력 2022.08.12 09:04

수정 2022.08.12 14:34

아침가리골의 맑고 차가운 계류에서 계곡 트레킹을 만끽하는 탐방객 ⓒ 뉴스1
아침가리골의 맑고 차가운 계류에서 계곡 트레킹을 만끽하는 탐방객 ⓒ 뉴스1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임도 오르막과 내리막. 시멘트 오르막에선 땀범벅이 되고, 흙길 내리막에선 이야기꽃을 피운다 ⓒ 뉴스1
임도 오르막과 내리막. 시멘트 오르막에선 땀범벅이 되고, 흙길 내리막에선 이야기꽃을 피운다 ⓒ 뉴스1


임도에서 만난 야생화. 왼쪽 쉬땅나무 꽃. 꽃과 열매가 수수깡을 닮았다는 이름뜻이다. 오른쪽 물봉선. 물봉선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다. 건드리면 씨앗이 톡 터지기 때문이다 ⓒ 뉴스1
임도에서 만난 야생화. 왼쪽 쉬땅나무 꽃. 꽃과 열매가 수수깡을 닮았다는 이름뜻이다. 오른쪽 물봉선. 물봉선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다. 건드리면 씨앗이 톡 터지기 때문이다 ⓒ 뉴스1


강원도표 포스터와 막걸리. 땀범벅이 되어 도착한 고개의 간이매점에 차려진 소박한 안주와 생막걸리 한 사발 ⓒ 뉴스1
강원도표 포스터와 막걸리. 땀범벅이 되어 도착한 고개의 간이매점에 차려진 소박한 안주와 생막걸리 한 사발 ⓒ 뉴스1


아침가리골의 초입. 잠시 망설이다가 텀벙텀벙 물에 들어간다. 온몸에 한기가 돌며 짜릿하다 ⓒ 뉴스1
아침가리골의 초입. 잠시 망설이다가 텀벙텀벙 물에 들어간다. 온몸에 한기가 돌며 짜릿하다 ⓒ 뉴스1


짜릿한 계곡 트레킹. 한 탐방객이 허리까지 차는 물에서 탄성을 지른다 ⓒ 뉴스1
짜릿한 계곡 트레킹. 한 탐방객이 허리까지 차는 물에서 탄성을 지른다 ⓒ 뉴스1


계곡물을 건너는 사람들. 하류까지 이런 물길을 열댓 번 넘어야 한다 ⓒ 뉴스1
계곡물을 건너는 사람들. 하류까지 이런 물길을 열댓 번 넘어야 한다 ⓒ 뉴스1


물살에 몸을 맡겨, 신나게 떠내려가는 물놀이 ⓒ 뉴스1
물살에 몸을 맡겨, 신나게 떠내려가는 물놀이 ⓒ 뉴스1


뚝발소. 우람한 암반과 급류가 멋지지만, 높은 바위가 미끄러워 위험하다 ⓒ 뉴스1
뚝발소. 우람한 암반과 급류가 멋지지만, 높은 바위가 미끄러워 위험하다 ⓒ 뉴스1


아침가리골 하류. 3~4시간의 계곡 트레킹을 마무리하며, 오히려 생기가 도는 사람들 ⓒ 뉴스1
아침가리골 하류. 3~4시간의 계곡 트레킹을 마무리하며, 오히려 생기가 도는 사람들 ⓒ 뉴스1


래프팅의 천국 내린천. 사진 인제군청 ⓒ 뉴스1
래프팅의 천국 내린천. 사진 인제군청 ⓒ 뉴스1


방태산 어느 계곡의 가을. 사진 인제군청 ⓒ 뉴스1
방태산 어느 계곡의 가을. 사진 인제군청 ⓒ 뉴스1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폭염의 계절에 몸이 시릴 정도로 차갑고 깨끗한 물에서 자연과 자유를 만끽하는 계곡 트레킹을 나선다. 강원 인제군 방태산 자락의 깊은 오지에 꼭꼭 숨어있는 아침가리골로 간다. 방태산(1435m)의 깊은 산골에 3둔(월둔, 살둔, 달둔), 4가리(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가 있다. 둔은 펑퍼짐한 산기슭을, 가리는 계곡의 가장자리 또는 '(흙)갈이'를 뜻한다.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에서 이 3둔4가리를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깊은' 피난처로 지목했다.
실제로 6.25전쟁 때 이곳 주민들이 전쟁이 난 줄을 몰랐다고 한다.

아침가리골은 방태산의 구룡덕봉에서 발원하여 방태천으로 흘러드는 약 20㎞의 물길이다. 아침가리는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친다'는 뜻이다. 그만큼 첩첩산중의 협곡이고, 야생이 살아있는 원시계곡이다.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있을 정도다. 계곡가로 오솔길이 있지만 물을 건너야 할 지점이 계속 나오고, 여기에 다리는 없다. 따라서 물에 첨벙첨벙 빠지며 길을 가야 한다.

계곡 트레킹은 준비가 필요하다. 신발은 미끄럼 방지기능을 강화한 아쿠아 트레킹화가 있는데, 쓰던 등산화를 사용해도 좋다. 두꺼운 양말을 신어서 모래가 들어와도 피부에 자극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방수팩이 있으면 좋고, 배낭을 커다란 비닐에 단단히 싸매는 방법도 있다. 이때 내용물은 비닐로 여러 겹 싸서 배낭에 넣고, 핸드폰과 지갑은 지퍼백에 담아 비닐로 싸서 배낭 상단에 보관하는 게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틱이다. 물속은 돌이 미끄럽고 물살이 세서 스틱을 탁탁 박으며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물속을 걸을 때 검은색이나 갈색 돌은 물이끼가 덮인 경우가 많으므로 피하도록 한다. 무릎 이상 차는 계곡물은 물살이 세서 일행들과 가까이 함께 건너는 것이 좋다.

◇ 방동약수~임도 고개~조경동 다리 6.2㎞ "땀 뻘뻘 오르막, 휘파람 휘휘 내리막"

주말의 오전, 아침가리골 입구는 주차장도 도로변도 만차다. 길목에 있는 방동약수터에 사람들이 큰 통을 들고 줄을 길게 서있다. 양해를 구하고 한 모금 들이켜니 짭조름하고 비릿한 맛이 혀 끝을 톡 쏜다. 철분이 많은 '쇠물 맛'이다.

약수터에서 징검다리를 넘으면 곧 시멘트 임도다. 고개 정상까지 3㎞의 꾸준한 오르막이 계속된다. 트레킹에 나서는 사람들이 "처음이다, 두 번째다, 매년 온다" 이야기들이 많다가, 10분도 되지 않아 말이 없어지고, '헉헉!, 후후!'하는 신음소리로 바뀐다.

이 오르막에서 땀을 빼는 것은 몸에 좋은 일이지만, 여기까지 와서 매연을 마시는 것은 고통이다. 대략 3분에 한 대씩 차량이 오르내린다. 임도 고개까지 쉽게 오르려는 사람들이 택시나 주민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차가 올 때마다 사람들이 옆으로 피한다. 차량은 10분에 한번씩 한꺼번에 이동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야생화 천국인 방태산답게 임도 주변에 동자꽃, 달맞이꽃, 칡꽃, 쉬땅나무꽃이 듬성듬성하지만, 호흡이 가빠진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다. 기자도 그냥 지나치다가 올해 처음 보는 물봉선 앞에서는 걸음을 멈췄다. 이슬을 머금은 분홍빛 꽃잎이 미인의 입술처럼 생겼다. 물봉선이 피었다는 것은 이제 여름의 끝, 가을의 초입이라는 것이다. 여기가 고지대이기 때문에 그렇다.

중간에 두세 번 쉬고 45분 만에 임도 고개에 오른다. 백두대간트레일 안내센터와 작은 주차장이 있는 곳이다. 계곡 상류로 올라가는 백두대간 길은 사전예약자만 통과시키고, 계곡 하류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대표자만 인적사항을 적고 통과시킨다.

이 고개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장소가 있으니, 그곳은 동네 주민들이 생막걸리와 오미자차, 식혜 등을 파는 간이매점이다. 2000원을 내며 왜 '쌩'막걸리입니까? 라고 물으니, 아침에 나와 쌩쌩하고 얼려서 시원하다 한다. 땀범벅이 된 사람들이 반드시 쉬어가는 요지에 자리한 참새방앗간이다.

여기서 계곡까지는 3.2㎞ 40분 거리의 내리막 임도다. 포근한 흙을 밟고 하얀 자작나무숲을 지나며 삼삼오오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진다. 주로 건강, 등산에 관한 얘기가 많고, 산에 산장을 더 만들어야 한다느니, 아무것도 설치하지 말아야 한다느니 하는 환경논쟁도 있다.

계곡에 다가서며 콸콸대는 물소리가 커지고, 계곡물이 냉각시킨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곧 조경동 다리에 도착한다. 조경동(朝耕洞)은 아침가리계곡의 한자어 표기다. 다리 입구에 무인매점인 약초상회 컨테이너가 있다. 컵라면과 막걸리 값은 돈통에 넣으면 되는데, 약초와 산삼은 어떻게 값을 치르는 것인지 궁금하다.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 입구에 휴대폰 불통구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지만 신경쓰는 사람은 없다. 한 시간쯤 문명과 단절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휴대폰 없는 야생동물처럼.

◇ 조경동 다리~아침가리골~갈터마을 6㎞ "온몸이 시린 계곡물에 잠겨 여름을 잊다"

계곡 입구의 숲은 점심장소다. 점심시간이기도 하지만, 배낭이 물에 젖기 전에 내용물을 최소화해야 할 필요도 있다. 다들 즐거운 표정이지만, 어떤 단체에서 버너로 라면을 끓이고 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제 출발이다. 기자는 핸드폰과 지갑을 비닐 두 겹에 싸매어 작은 백에 넣은 후, 백을 배낭끈의 어깨 위에 고정시켰다.

계곡 옆길을 가다가 드디어 길이 사라진 포인트에 다다랐다. 계곡물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계곡물에 첫발을 담근다. 텀벙텀벙~ 물이 발목에 차고, 신발 속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와 발가락을 놀라게 하며, 전신에 짜릿한 청량감이 전해진다. 후덥지근했던 등어리가 금방 오싹해진다. 물이 맑아 계곡의 바닥이 투명하게 보인다. 모래와 자갈과 암반과 물결이 잘 찍은 생태영화처럼 아른거린다.

물을 나와 잠깐 걸으면 또 물을 건너야 하는 지점이 나온다. 무릎 아래 물에서는 종아리를 간지럽히는 흐름이지만, 허벅지가 잠기는 물에서는 물살이 다리를 휘감아 몸을 휘청거리게 한다. 몸을 기우뚱하면서 스틱으로 균형을 잡는다. 배꼽까지 물에 잠기는 곳에서는 더듬더듬 가다가 몇몇 사람이 넘어져 아예 수영하는 모드로 전환한다. 처음부터 풍덩풍덩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도 늘어난다.

아침에만 잠깐 해가 비치는, 그늘진 계곡물은 차갑다. 3분 정도 있으니 뼈가 시려온다. 폭염의 계절에 이런 얼음계곡이 있는가? 사람들 얼굴은 하나같이 10년 전, 20년 전의 표정으로 돌아간다. 더 오래 전으로, 어린이 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다. 이따금 버들치인지 피라미인지 모래색깔 물고기들이 나타났다 금방 사라진다. 하얀 바위들 틈마다 초록 돌단풍 잎들이 빼곡하다. 계곡은 구불구불 길게 이어지고, 물은 차갑고 투명하며, 물살은 거침없다.

3㎞쯤 내려가니 울뚝불뚝한 암반에서 계곡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뚝발소(沼)라는 깊은 웅덩이가 있다. 이곳에 떨어진 물들은 급하게 맴돌다 거칠게 넘쳐서 하류로 간다. 위험해 보이는 이곳에 '물놀이 금지, 사고 다발지역'이라는 경고판이 많다. 그러나 그만큼 사람들도 많다.

계곡 중간부터는 산길로 내려가는 사람이 늘었다. 그리 가더라도 반드시 물을 건너야 하는 포인트가 나온다. 넓은 물에서는 물싸움을 하는 '어른-어린이'들이 많아졌고, 물살이 센 곳에서는 배낭을 안고 신나게 떠내려가는 사람도 많다. 허리 위까지 차는 깊은 물길에서 로프를 잡고 건너는 포인트가 마지막 클라이맥스다. 긴 배낭을 머리에 이고 "유격! 유격!"하며 건너던 사람이 기우뚱하다가 배낭을 떨어트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열댓 번 물을 건너는 3시간쯤의 계곡 트레킹을 마치고 개선장군처럼 육지로 나간다. 도로와 동네가 보이고, 아침가리골이 방태천과 합류하는 지점을 건넌다. 그런데 물 온도가 갑자기 미지근해졌다. 아! 아침가리골의 물이 그토록 청량했었구나!를 고마워하며 진동1리 갈터마을에 올라섰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는 사람도 있고, 샤워비 1000원을 받는 펜션을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 식당 천막 아래서 막걸리 파티가 한창이다.

돌아가는 버스 안, 물장난을 치던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면 꼭 잠을 잤던 것처럼, 오늘 물놀이를 마친 어른들도 모두 스르르 꿀잠에 빠져든다.

아침가리골을 품은 방태산은 주억봉(1444m), 구룡덕봉(1388m), 가칠봉(1241m) 등의 고봉을 거느린 품넓은 산이다. 정상의 능선에 서면 북쪽 설악산에서 남쪽 오대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산너울이 가깝게 조망된다. 봄과 여름의 방태산은 야생화 천국이고, 가을에는 붉디붉은 단풍이 꽉 들어차는 자연림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했던 머나먼 인제는, 이제 일부러 찾아가는 여행지다. 설악산의 절반이 인제군 땅이다. 백담계곡과 십이선녀탕계곡, 대승폭포, 황태해장국의 고장 용대리가 거기에 있다.
래프팅의 성지 내린천, 신비한 대암산 용늪, 원대리의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그리고 야생화 천지 곰배령과 진동계곡이 인제에 있다.

과연 전쟁과 질병이 들지 않는 이상향에서 시름을 잊고 즐긴 여행이었다.
계곡 트레킹의 유토피아 아침가리골을 다녀오며, 버킷리스트의 한 줄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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