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명 A' 냅코 특수요원 출신의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선생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기업가로 알려진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그는 14세였던 1909년, 독립군 양성을 위해 미국에 설립된 '한인소년병학교'에 입학한 후 꾸준히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독립선언서가 발표됐던 1919년에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서 한국인 대표로 결의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특히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처 OSS(현 CIA 전신)의 비밀 침투 작전인 냅코 작전의 공작원으로 입대하기도 했다. 당시 유일한 박사는 '암호명 A'로 불리며 폭파, 통신, 낙하 등 특수공작훈련을 받았다. 광복과 함께 이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지만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실천한 애국정신은 오늘날까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유한양행은 올해로 창립 96주년 맞았으며, 매출액 기준 국내 1위 제약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까스활명수' 팔아 독립운동 지원한 동화약품 초대 사장 민강 선생
동화약품의 초대 사장인 민강 선생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힘쓴 것으로 유명하다. 민강은 1909년 청년들을 중심으로 비밀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어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후 동화약방을 독립운동 자금 조달의 거점으로 활용하며 '서울 연통부'를 운영했다.
당시 일제의 감시로 인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고 그는 소화제 '활명수'를 직접 중국으로 보낸 뒤 이를 팔아서 자금을 마련했다. 이후 민강은 임시정부에 발송할 비밀문서를 목판에 새기다 발각되는 등의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63년, 그는 이 같은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이 서훈됐다. 또한 민강의 독립운동 정신은 5대 사장인 윤창식 선생과 7대 사장인 윤광열 명예회장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동화약품은 민강을 포함해 독립운동가 3명을 배출한 기업으로 거듭나며 명실상부한 '민족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독립운동가 치료 전념, 자생한방병원의 전신 세워 나눔 의료 펼친 한의사 신광열 선생
한의사들 역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자생한방병원 설립자 신준식 박사의 선친 신광열 선생이 대표적이다. 한의사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그는 3·1절 11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일어난 시위를 이끌었다. 당시 저항운동의 세를 확장하기 위해 전단을 살포하던 중 시위 주동자로 지목을 받았던 신광열은 기병대가 휘두른 경찰도에 맞아 옆구리에 30cm나 되는 큰 자상을 입었다. 이후 수감번호 '1679'를 부여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다.
그는 수감생활 속에서도 독립운동의 의지를 잃지 않았고 석방 이후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들의 치료를 도왔다. 또한 의료 낙후지역인 아산시 도고역 앞에 청파한의원을 개원한 뒤 17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지역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그가 작고한 1980년까지 의료활동은 지속됐으며 청파한의원은 현재 자생한방병원의 전신이 됐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