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日전범기업 한국 자산 현금화 분수령
1940년대 일본 제철소 등서 강제 노역 피해
2018년 피해자 대법 승소 후 한일 관계 격랑
약 4년간 한일 정부 대치…尹정부 해결 시도
日 완강 태도…尹정부 얼마나 양보할지 주목
일본 정부는 현금화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쓰비시 등 일본 전범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강제로 현금화되기 시작하면 한일 관계는 전례 없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한일 관계에 핵심 변수가 된 강제 징용 문제는 어떤 사안일까.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주로 1920년대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평양 등에서 거주하던 이들이다. 피해자들은 1943년 9월 일본제철 공원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해 오사카 현지 제철소에서 훈련공으로 노역에 종사했다.
일본 오사카 등에서 제철소를 운영하던 군수사업체인 일본제철은 당시 광고에서 '오사카에서 공원으로 2년 동안 근무하면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그 후 제철소 기술자로 취직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오사카 제철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기숙사에서 거주하며 외출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이들은 용돈 수준에 불과한 2~3엔만 한 달 임금으로 받았다. 게다가 일본제철은 낭비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기숙사 사감이 임금 통장과 도장을 보관하게 했다.
피해자들은 화로에 석탄을 넣고 부수거나 파이프 안에 생긴 석탄 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위험성은 높지만 기술 습득과는 거의 무관한 노역에 종사했다. 식사 양은 형편없었다.
엄밀한 의미의 강제 징용이 시작된 것은 1944년 2월께부터였다. 그때부터 피해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고된 노역에 종사했다. 1945년 6월께 북한 청진으로 이동한 이들은 새 제철소 건설 노역에 장시간 종사해야 했다. 이들은 1945년 8월 소련군이 공장을 공격해 파괴하자 서울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해방 소식을 들었다.
피해자들 중에는 1941년 보국대로 동원돼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제철의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용광로 관련 노역에 종사했던 인물들도 있다.
이들은 심한 먼지로 고통을 받았고 산재 사고를 당해 수개월 동안 입원하기도 했다. 일본제철은 이들에게도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며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 처음 6개월간은 외출 자체를 금지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1943년 1월 군산에서 모집에 응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제철 야하타 제철소에서 고된 노역에 종사했다. 그는 노역이 힘들어 도주를 시도하다가 들켜 심한 구타를 당했으며 식사도 제공 받지 못했다.
이 같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본격적으로 일본과 일본제철 등 전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였다.
이에 따라 강제 징용 소송은 한국에서 이뤄지게 됐다. 피해자들은 2005년 2월28일 서울중앙지법에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2008년 4월 1심(서울중앙지법)과 2009년 7월 항소심(서울고법)에서는 모두 패소했지만 상고심(대법원 2012년 5월)은 파기 환송했다. 이후 2013년 7월 환송 후 항소심(서울고등법원)에서 마침내 승소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2018년10월30일 승소로 확정됐다.
이 같은 판결에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끌던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은 일한청구권협정 제2조에 명백하게 반하며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구축해온 일한 우호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저에서부터 뒤집는 것"이라며 "즉각 적절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을 경우 국제 재판과 대항 조치를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포함해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항의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 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포함한 모든 사안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개인 보상은 끝났으며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기는 하지만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 협정을 위반한 것이며 이는 모두 한국 정부 국가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 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하며 일본도 마찬가지"라며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이 만들어낸 문제들이 아니며 과거 불행했던 역사로 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등록된 강제 징용 피해자 지원 단체는 34개에 달하며 전체 강제 징용 피해 인정자는 약 21만8000여명이다. 일본제철 관련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 등에게 지급될 1억원을 기준으로 모든 피해자에게 지급할 경우 지급 규모는 약 22조원에 달할 형편이었다.
다른 국가 폭력 피해자와 형평성 문제 역시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당시 대법원 판결 피해자 보상금 1억원은 법정이자 20%가 가산돼 이미 2018년 10월 시점에 2억6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2008년 지급된 강제 징용 피해자 위로금 2000만원에 비해 최대 10배다. 광주민주화운동 사망자 보상금 약 4500만원이나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상과 비교해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 원고단은 일본 도쿄 신일철주금(일본제철) 본사를 방문해 협의를 요청했지만 이 회사는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 세 차례나 불응하자 원고단은 강제 매각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9년 3월 대전지법을 시작으로 일본 전범 기업 자산에 대한 압류 신청이 잇따랐다.
문제를 해결할 기회는 있었지만 일본 측이 기회를 차버렸다. 2019년 6월19일 한국 외교부는 "소송 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함으로써 당사자들 간의 화해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일본이 수용할 경우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1항 협의에 따라 외교적 협의를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는 가운데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기금 참가를 유도하는 대안이었다.
피해자들도 당시 외교부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제징용 피해 공동행동의 주요 단체인 강제징용 소송 대리인단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당일 긴급회의를 열고 "한국 정부의 입장은 한일 간 협의를 개시하기 위한 사전 조치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4일 한국을 상대로 무역 보복을 가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총수출의 20%가 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를 개별허가 품목으로 전환하며 한국의 허를 찔렀다. 또 수출관리상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시 관련절차를 간소화해 주는 국가 목록)에서 배제했다.
이에 한국 정부가 해법을 제시하려 했지만 일본 정부는 거듭 뿌리쳤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2019년 광복절 직후 특사를 파견해 도쿄에서 고위급 협상이 이뤄졌다. 일본 기업이 먼저 배상한 후 한일 기업과 정부가 기금을 마련해 일본기업에 변상하는 '1+1+알파' 방안도 거론됐다. 같은 해 10월23일 이낙연 총리 방일을 앞두고 한국이 먼저 배상하고 한일 양국기업이 모금으로 변상하는 선후를 바꾼 제안을 내놨지만 일본 정부는 이마저 걷어찼다.
2019년 12월 이후 최대 쟁점은 현금화를 예방할 해법을 찾을 수 있느냐 였다. 2019년 10월 기준 대법원과 고등법원 강제 징용 승소자는 32명, 압류 허가 금액은 약 25억3000만원까지 늘어나 있었다.
미쓰비시중공업 사례가 가장 임박한 문제다. 2021년 9월28일 대전지법은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측이 압류한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 2건과 특허권 2건에 대해 매각 명령을 내렸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즉시 항고에 나섰으나 기각됐고 올해 4월에 재항고했다. 재항고가 기각되면 매각 명령이 확정된다. 그 시기가 오는 19일이다. 이후 일본제철에 대해서도 같은 매각 명령이 이어질 예정이다.
기시다 정부는 현금화 문제 해결 방안을 한일 정상 회담 성사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 때문에 지난 6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 회담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발표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면했을 당시 현금화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금화 문제가 남아있는 한 기시다 정부가 일본 국내 정치적으로 한국과의 관계에서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생기기 어려워 보인다. 나아가 현금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경제에서의 수출규제 조치, 안보에서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문제 역시 풀리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 전범 기업 자산 현금화 문제로 한일 관계의 악화가 지속되면 이는 미국 정부가 원하는 한미일 협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한국 반도체 생산에 불확실성과 경제적 비효율성을 가져오면서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자산 현금화가 실행될 경우 일본 정부가 추가 보복 조치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언론은 현금화 후 일본 정부 대응 조치로 ▲비자 제한, 대사 소환 등의 외교적 조치 ▲보복 관세, 한국 자산 압류, 수출규제 강화 등의 경제적 조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투자분쟁해결국제센터(ICSID) 활용 등 거론했다.
양기호 주고베 총영사(성공회대 교수)는 '강제징용 쟁점과 한일관계의 구조적 변용: 국내변수가 양국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기존의 한일 갈등 요인과 달리 강제 징용 쟁점은 사법부 판결이 역사 갈등으로, 역사 갈등이 통상과 안보갈등으로, 더 나아가 국민 상호 간 반감으로 증폭된 점이 사뭇 다르다"며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 문제는 한일 국장급 정책대화, 조건부 연기 등으로 위기관리에 들어갔지만 강제 징용 문제는 아직까지 해법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 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용인 제주대 교수는 '한일청구권협정과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논문에서 "이제라도 일본은 한반도 강점의 불법성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과 일본이 20세기의 부정적 유산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암울한 역사를 극복하고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일 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평화공동체를 건설하라는 시대적 사명에 부응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강제 징용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면 한일 관계가 급격히 개선될 여지가 있다.
윤석정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와 한일 관계: 평가 및 전망' 보고서에서 "현금화 문제의 합리적 해결 방안을 도출함으로써 현금화 문제의 조기 해결이라는 한일 간 최소한의 접점에 내실을 기하고 한일 정상회담의 조기 실현을 일본 정부에게 촉구해야 한다"며 "한일 외교 당국 간의 협의가 경제·안보 현안을 포함한 포괄적인 내용으로 진전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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