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외환송금 논란
감독당국 ‘자금통로’ 은행 질타
"내부 통제 발동 안됐다는 방증"
은행 "액수 크다고 가담 몰면 억울"
감독당국 ‘자금통로’ 은행 질타
"내부 통제 발동 안됐다는 방증"
은행 "액수 크다고 가담 몰면 억울"
은행들의 내부통제 문제인가, 아니면 국가가 만든 '내부통제 시스템'의 문제인가. 최근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거액의 외환송금이 이뤄지면서 금융사들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불법 환치기' 정황이 있는데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돈을 내줬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검찰 등 사법기관에서는 가상자산 형태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외환을 송금한 행위를 불법 환치기로 보고 이에 가담한 업체와 직원을 잡아들이고 있다. 가장 앞서 총대를 멘 건 사법당국이 아닌 금융감독원이다. 금감원은 거액의 외환송금을 금융사 내부통제 문제로 판단하고 조사하고 있다. 금감원장은 연일 "외환거래 들여다보니 훨씬 더 심각하다" "불법성이 명확하다"고 확언하고 있다. 수조원에 달하는 돈의 크기와 가상자산 연루 혐의, 또 이 돈이 중국·일본으로 흘러갔다는 소문에 나라가 들썩이는 동안 정작 사안의 본질은 잊히고 있다. 이 사안이 과연 횡령과 같은 은행 내부통제 문제냐는 것이다. 현행 내부통제 규정에 따르면 은행이 자금세탁 방지를 규정한 특금법이나 외환거래법에 따라 돈을 내준 것이라면 금감원이 문제 삼을 수 없다. 금감원이 이상 외환송금을 금융사의 내부통제 프레임으로 잡은 것이 옳은지를 3편에 걸쳐 살펴본다.
최근 불거진 이상 외환송금 규모가 8조원대로 알려지면서 감독당국이 '자금통로'가 된 은행들을 연일 때리고 있다.
수조원에 달하는 외환송금으로 은행들의 거래시스템에 허점이 노출됐고, 제재가 불가피하다며 은행 책임이라는 것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시스템에 따라' 돈을 내줬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에 따라 송금했고, 현행 내부통제 제도에 따라 신고했다는 것이다.
■금감원 "은행들, 인보이스 하나로 수조원 내줬다"
14일 금융당국과 금융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은행들이 최근 자체점검 현황을 제출한 결과 의심거래 액수가 총 8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관련된 업체만 65개사에 이른다.
금융당국은 외환송금 업무를 취급한 은행이 외국환거래법과 특금법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해외송금 거래는 대부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무역법인 계좌로 모인 뒤 해외로 송금되는 구조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은행이 외환을 지급하고 수령할 때 입증서류를 얼마나 제대로 확인했는지를 파악 중이다.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만든 특금법은 은행이 고객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했는지(CDD) 여부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김치프리미엄'을 노린 환차익 거래세력들을 포착했고, 은행들에 돈을 신중하게 내주라고 경고했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며 분개하고 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낯선 업체가 인보이스 하나 들고 와서 거래해 달라고 하는데, 은행이 적합성을 따지지 않고 단순히 무역대금으로 판단해 송금해준 것"이라며 "지난해 5대 은행 외환담당 부서장들과 화상회의를 열고 주의를 당부했으나 이런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갓 신설된 회사가 이렇게 큰 규모의 거래를 하는데 한 번도 걸러지지 않은 것은 은행의 내부통제 기능이 발동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면서 "특금법상 신원확인(CDD), 의심거래보고(STR)를 비롯한 업무처리 절차 중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은행들 "자금세탁 가담한 것처럼 몰아" 억울
하지만 은행들은 송금이라는 행위가 곧 불법세력에 '협력'했다는 것과 동일시되는 것에 억울하다고 말한다. 해외로 송금된 불분명한 자금이 8조원을 넘는 큰 규모이고, 전 금융권이 연관돼 이목이 쏠린 것과 별개로 결코 능동적으로 협력한 것은 아니란 주장이다.
특히 은행들이 당초 이상 거래임을 감지한 이유가 바로 '거액'의 금액이 송금됐다는 점인데, 어떤 지점이 은행 잘못으로 귀결되느냐는 것이다. 업체가 범죄를 작정하고 허위서류를 만들어 송금조건을 갖춰 오면 막을 도리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히려 은행들은 자체 감사에서 비정상적 외환거래를 포착, 신고한 것을 내부통제 시스템 가동 덕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 특금법, 외국환거래법을 명백히 위반한 정황이 있다면 당연히 이에 응당한 처벌과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게 맞다"면서도 "하지만 단순히 송금된 외환 규모가 크다고 해서 은행이 협력했다고 몰고 가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은 서류상 문제가 없으면 송금해 주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은행들은 자체적 '자금세탁방지센터' 등을 운용해 이상 거래를 상시로 살피고 있다.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STR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제출하고, FIU는 국세청에 보고한다.
은행권 또 다른 관계자는 "전 금융권에서 사고가 일어난 만큼 이번 외환송금이 사고라고 규정되더라도 특정한 은행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며 "FIU부터 금융위까지 제도적 허점이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제도가 개선되더라도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고려되는 방안은 최초 거래만 회사 방문을 의무화하거나 큰 금액 송금의 경우 외환지원센터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 등이 논의된다. 하지만 회사 방문을 하는 것만으로 이후 거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는 여전히 힘들 것으로 지적됐다.
psy@fnnews.com 박소연 김동찬 이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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