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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조폭 50명 흉기 난투극…그날 익산의 밤은 공포였다

뉴스1

입력 2022.08.19 06:06

수정 2022.08.19 06:06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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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뉴스1) 김혜지 기자 = "다른 조직과 싸움이 나면 지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

지난 2월6일 오전 0시43분 전북 익산시 동산동의 한 장례식장. 역전파 소속 조직원 A씨(44)는 30년 넘게 이어져온 조직의 행동 강령을 지킬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상대 조직인 구시장파의 조직원이 숨졌다는 소식에 조문을 갔다가 B씨와 시비가 붙은 직후였다.

당시 A씨는 B씨가 자신의 부름을 무시하고 지나가자 뺨을 때렸다. 화가 난 B씨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구시장파 조직원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렸고, A씨는 집단 폭행을 당했다.

이후 A씨는 B씨에게 사과를 받았지만 분은 풀리지 않았다. 자신을 폭행한 구시장파 다른 조직원들이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장례식장에 있던 같은파 조직원 3명과 함께 구시장파 조직원들에게 "왜 사과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구시장파 부두목은 오히려 역전파 조직원의 뺨을 때렸다. 그 광경을 본 역전파 조직원들은 금방 달려들 듯이 기세를 내뿜었다. 두 조직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A씨는 일단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당시 새벽 1시였다.

"이대로 갈 순 없다. 행동 강령에 따라 우리 조직에 대항한 자들은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A씨는 후배 3명을 불렀다.

낌새를 감지한 구시장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구시장파 조직원들은 선배의 부름에 장례식장 내에서 두 손을 모으고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이후 1시간여가 지난 새벽 2시16분, 역전파 조직원 12명이 차례로 장례식장 앞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선배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한다. 선배에게는 머리를 90도로 숙여 예의를 갖춰 조직의 위계나 세력을 과시토록 한다. 사태 발생 시 칼 등 흉기를 사용해 상대 폭력세력을 제압하고, 폭력계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행동강령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역전파 조직원들이 흉기까지 들고 몰려왔다는 소식에 구시장파 조직원들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장례식장에 세워진 화환을 부려뜨려 만든 각목을 손에 쥐었고, 장례식장 내에 있는 각종 집기를 들고 1층으로 향했다.

뒤늦게 도착한 구시장파 조직원들도 야구방망이, 손망치, 골프채, 흉기까지 챙겨 차에서 하나둘 내렸다. 그렇게 모인 구시장파 조직원만 모두 38명에 달했다.

그리고 구시장파와 역전파 50여명은 도심 한 복판에서 순식간에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맞섰고, 이를 놓치자 주먹과 발로 무차별적으로 상대 조직원들을 폭행했다. 숫자에 밀린 역전파 조직원들은 머리가 찢겨 피가 났고,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5~6분 정도 이어진 패싸움은 시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면서 끝이 났다.

이후 일부 조직원은 경찰에 자진 출석해 혐의를 인정했지만, 일부는 수사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조직원에게 연락한 이유에 대해 "같이 모여서 술 마시려고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시장파 조직원 일부는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며 증거인멸 정황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두 조직원들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단체 등의 구성·활동)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 선 구시장파 조직원들은 "범죄단체가 아니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경조사만 참석할 뿐 조직체계가 유지되지 않고 있어 실체를 상실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여러 증거들에 비추어 볼 때 구시장파는 구성원들 간 관계가 선·후배 혹은 형, 아우로 뭉쳐져 특유의 규율에 따른 통솔이 이뤄지고 있다"며 범죄단체로 판단했다.

1심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정성민)는 지난 12일 "범죄단체는 다수인이 조직적·계속적으로 결합해 선량한 시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주거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등 사회의 평온과 안전을 심각하게 해한다는 점에서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구시장파 3명에게 징역 3년, 역전파 2명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앞서 경찰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조직폭력배 50명(18명 구속)을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들에 대한 1심 재판은 이번 5명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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