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30주년 fn긴급대담
[파이낸셜뉴스] 오는 24일 한국과 중국은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수교 30년 동안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속에 다양한 방면에서 교류를 지속하며 성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들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의 이슈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다시금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발목을 잡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3불'(사트 추가 배치 금지·미국 미사일 방어체제 불참·한미일 군사동맹 불참) '1한'(국내 배치된 사드 운용 제한)에 한국은 안보 주권 사안으로 협상이 불가한 영역으로 대응하고 있다. 때문에 양 국민 간 감정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19일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 소연회장에서 한중 수교 30주년 긴급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에는 우수근 한중 글로벌협회 회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전병서 중국 경제금융연구소 소장(가나다순)이 참석해 향후 발전적인 양국 관계를 모색하고, 과거의 묵은 앙금을 털고 미래지향적인 협업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해법에 대해 논의했다.
우수근 회장은 "언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중국과 현지에서 접하는 중국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차이나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중은 30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정신적으로는 데면데면하다"며 "상대는 호의적으로 지내려 하지만 우리가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 역사적으로 우리를 빈번히 침략했다는 점 때문에 중국을 적대시하고 거칠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한중관계가 계속해서 가까워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형국"이라고 말했다.
우태희 상근부회장은 "우리나라 수출액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이자 전략 국가"라며 "그런데 우리의 원칙이 없었다보니 보복을 당하고 수세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점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전병서 소장은 "지난 30년동안 중국이 발전하는 동안 한국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지 못했다. 우리나라 산업이 지난 30년간 중국에 빨려들어간 형국"이라며 "앞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서로 윈윈하는 관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로 바뀔 것이다. 공장과 기술이 넘어간 상태에서 중국의 새로운 급소를 찾아 한중 협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대담=정인홍 정책부문장(부국장대우)
―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은 현재, 한중관계를 어떻게 진단하나.
▲우수근= 똑같은 중국이라는 객체에 대해 한국 언론을 통해 바라보는 중국에 대한 간접적인 인식과 중국 현지에 살면서 접하는 중국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차이나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중국에 대해서는 이념과 역사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방은 호의적으로 지내려 하지만 우리가 상대 중국을 몰라서 적대시 하는, 그래서 한중관계가 계속해서 가까워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형국이다.
▲전병서=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전세계 GDP 비중이 엄청나게 올라갔는데 한국은 전세계 평균 성장률을 따라간 적이 없다. 우리나라 산업이 중국에 빨려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동안 윈윈(win-win)의 관계에서 경제적 측면에서는 향후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로 갈 것이다. 중국에 기술과 공장이 넘어간 상태에서 중국의 아픈 부분, 급소를 찾는 게 우리로서는 관건이다.
▲우태희= 30주년은 기념할 만한 일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한국이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 성장으로 기반으로 한 것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수출액 전세 4분의 1를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자 전략 국가다. 그 와중에 원칙이 없었다 보니, 우리가 사드와 같이 보복을 당할 때도 있었다. 이런 부분을 더 반성하고 새로운 지향을 찾아가야 할 시점이다.
― 2016년 7월 사드 배치 이후 최근까지 중국에서 사드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사드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라 보나.
▲우수근= 중국이 사드를 문제 삼아 한국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중국에도 피해가 막심하다. 작은 것을 보지 말고 중국이 왜 사드를 계속 거론하는지 봐야 한다. 중국에서는 이미 사드를 무력화할 무기를 개발 중이고, 중국에 사드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계속 사드를 거론하는 건 '중국 국익에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이웃 나라인 한국이 사전에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미국의 중국 견제와 관련해서 대화를 좀 더 하자', '이웃 간에 대화를 더 하자'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중국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대화와 타협에 상당히 능하다. 56개 민족으로 이뤄진 중국이 단일 왕조로 지내기 위해서 대화와 타협, 양보 문화가 자리 잡아 있다. 미중 패권전쟁이 강화되면 될수록 중국은 우리나라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미국 또한 중국 가장 옆에 있지만 자신과 친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을 필요로 한다. 중국으로서도 한국이 미국 쪽으로 치우치면 불리하기 때문에 한국이 계속 타협안을 제시하고 대화하려 하면 받아들일 것이다. 미중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중국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대한민국 국익의 관점에서 끈질기게 대화하려 해야 한다.
▲우태희= 중국은 큰 나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3가지다. 대화할 때 확실한 원칙, 일관되게 원칙을 얘기하는 태도, 그리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대화의 프로세스다. 한중 FTA 실무 협상을 하고 비준하는 과정까지 거치면서 느낀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가 중국산 철강에 안티덤핑 조치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협상 상대에게 조치 6개월 전부터 말했더니,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중국에 계속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전병서= 미중관계의 연장선상에서 한중관계를 봐야한다. 2016년 이후 6년을 짚어보면, 2016년에는 미중에서 지정학적 문제, 2018년에는 지정학적 무역 문제, 2022년에는 기경학적 문제가 가장 큰 이슈다. 한국의 사드 문제는 작은 나라의 숙명이기도 하다. '원숭이 길 들이려고 닭을 잡아 피를 보여줘서 길들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2016년에는 한국이 닭이 된 것이다. 사드는 미국이 중국 옆집에 있는 우리나라 전봇대에 CCTV를 단 것이지, 우리가 단 것이 아니다. 그런데 중국은 전봇대를 빌려준 우리에게 뭐라고 한다. 2016년의 사드와 현재의 사드는 다르다. 중국은 그 사이 인공위성을 달 뒷면에 올리는 등 군사기술이 발전했다. 이런 상황에 중국이 계속 사드를 거론하는 건 '핑곗거리', '시비걸기' 정도다. 사드 문제는 더 이상 중국의 관심사가 아니다. 현재 미중의 관점에서 중요한 건 기술이고, 반도체지, 사드가 아니다. 앞으로 우리는 한중관계에서 사드가 아닌 기술과 반도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미국에서는 반도체 공급망 합의체 '칩4' 가입을 압박하고 있다. 사실상 8월 말까지 답을 줘야 하는 상황인데 중국의 보복도 우려된다.
▲우수근= 우리 국익의 측면에서 칩4에 가입해야 한다. 중국이 가입하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사실은 용인하고 있다. 중국에서 볼 때 대만이나 홍콩은 사활적인 국익의 핵심이라 양보하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반도체는 한국의 사활적인 국익이다. 한국이 살기 위해서는 반도체 기술을 첨단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미국과 협력해야 하는데, 중국이 자꾸 그걸 반대하면 반중 정서나 감정만 자극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칩4 가입을 용인하되, 자신의 카드를 하나 들이밀 것이다. 이번 박진 장관의 외무장관 회담 이후 중국이 처음으로 '3불+1한'을 꺼낸 것은 중국이 한국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표한 것이다. 정리하면, 중국은 칩4와 같이 한국의 사활적 국익과 관련된 것은 용인하지만 사드 문제 등을 거론하는 건 '중국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서 한국이 진지하게 대화에 임해달라', '미국의 관점이 아니라 한중 국익의 관점에서 타협점을 찾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전병서= 중국 보복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미국의 정책이나 액션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칩4 동맹은 4차 산업혁명에서 미국의 '석유생산' 프로젝트다. 반도체 기술을 40년 안에 미국에 내재화하겠다는 것이 칩4 동맹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도 핵심은 반도체 동맹이고, 모든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우선 칩4나 IPEF가 가진 내재적 한계가 있다. 두 개 모두 바이든 정부가 주도한 정부 간 협약이지, 국가 간 조약이 아니다. 그래서 2년 후에 미국 정권이 바뀌면 없어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두번째는 기술이 시장을 못 이긴다는 것이다. 중국은 반도체 63%를 소비하는 나라인데, 중국에 반도체를 아예 공급하지 않으면 미국 시가총액 1위 애플을 포함해 나스닥 기업 등의 주가 폭락 위험이 있다. 시장 주도권을 쥐기 있기 때문에 중국이 그냥 보고 있는 것이다. 또 반도체 원자재와 부품 40%를 중국에서 가져온다. 중국이 소재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중국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칩4에 가입하면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 다만 대만이나 미국,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협상하고 달래서 기술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 '약한 고리'이기 때문에 일단 외교적으로 우아한 수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가 72%를 점유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반도체를 갖고 보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산업 경쟁관계에 있고, 중국에 대한 소재부품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OLED 사업이 오히려 폭탄을 맞을 위험이 있다. 이 두 가지 산업을 조심해야 한다. 칩4에 가입한다고 해도 반도체 산업 주가들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 최근 5년간 527억불 지원을 골자로 하는 미국의 반도체법이 발효됐다. 이 법에 중국에 수출할 경우 미국의 제재를 받는 조항이 있다. 반도체 전쟁이 계속되는 양상인데,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역할은.
▲전병서= 미국 반도체법은 527억불을 준다고 해서 큰 것 같지만, 내용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미국 반도체법은 외국의 장비·기술·제조·설비 회사에 지원을 늘린다는 점에서 미국 내 내분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 판단이나 언론, 학계 훈수는 소용이 없다. 여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삼성과 SK하이닉스 판단에 맡겨야 한다. 세계 1, 3등 기업인 삼성과 하이닉스가 손익분기점을 따지고 미래 시나리오를 계산해서 최선의 결정을 할 것이다.
▲우수근= 중국으로서는 미국 반도체법을 보고서 오히려 미국에 대해 더 자신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5년간 527억불을 투자해서 뭘 하겠나'라면서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부가 중국의 이런 표리부동한 면모까지 잘 따져보고, 미중 양국을 더 냉철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봐야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도 오히려 미국에 강경한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을 강화하고, 중국의 강경 노선을 강화할 수 있는 명분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미중 양국의 패권전쟁도 우리의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이런 모습도 면밀히 파악해야 어떻게 나갈 수 있을지도 나오는 것이다. 절대 한쪽으로 쏠려서는 안 된다.
▲우태희= 칩4는 한국이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도체는 엄청난 국제 분업 구조를 갖고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국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빨리 칩4로 가서 '룰 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십조원이 투자가 된 부분에 대해 계속 규제나 제재가 들어올텐데, 우리 기업이 이미 투자한 자산에 대한 보호 조치 등 정부가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해 레드라인을 정해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칩4에 대해 보복하면 가장 영향을 받는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에 정부가 미국에 설득해달라는 것이다. 반도체에 관한 한 기업의 이익이 곧 국익이라는 생각을 갖고 정부가 나서야 한다.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 이익을 수렴해서 미국에 전달하고 레드라인으로 해서 협상을 해야 한다. 칩4와 IPEF 모두 규범을 형성하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때 들어가서 미국과 좋은 조건으로 들어가서 협상하는 것이 좋다. 중국에 대해서는, 당당한 태도로 요구해야 한다. 미중갈등은 한국이 시작한 게 아니라 중국의 2025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또 2015년 한중FTA 비준 이후 서비스 협상이 8년째 지연되는 등 중국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없어서다. 아울러 IPEF의 경우에도 중국이 들어오지 못하는 건 중국이 국제규범과 어긋나는 관행을 하고 있어서라는 걸 지적해야 한다. 중국이 빨리 경제를 업그레이드해서 선진국과 함께 하려면 '너희들이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인데 왜 한국 탓하는지' 목소리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정부에도 우리 이익을 대변하고 중국 정부에는 조금 더 당당하게 얘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포스트 한중수교 30주년'을 열어갈 윤석열 정부에 제언하고 싶은 것은.
▲우수근= 한국도 반성해야 한다. 중국의 0.00001%의 일그러진 인식을 갖고 한복이나 김치 공정이라고 하면 '제대로 된 지피지기'를 할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과거의 우리를 침략한 중국이 아니라 과제가 산적해있지만 G2가 된 중국이다. 우리가 중견 강국이 됐음에도 중국을 제대로 모르고 과거에 사로잡혀 있으면 당당한 외교를 할 수 없다. 또 중국을 서구적, 미국 이익의 관점에서 바라 볼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 국가로 봐야 한다. 중국과 한국은 역사적으로 상호작용 해오고 유교 문화 등을 공유한 나라로, 정체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알고 활용할 것도 많다. 한중 관계가 개선되면 중국도 북중관계에서 한국의 입장을 좀 더 반영할 수 있다. 중국 고위 관료들에 따르면, 우리가 '친중정권'이라 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크게 한중관계가 개선되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한번도 성사되지 않은 게 대표적 사례다. 새 정부에서 중국에 당당한 외교를 하려면 중국에 대한 제대로 된 '지피'가 중요하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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