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규제에 자산운용사들이 남의 집을 전전하고 있다. 최근 자산운용사가 펀드로 매입한 건물에 계열사만 입주하고, 해당 운용사는 입주하지 못해 그룹 간 시너지가 제한되는 등의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자연스레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2020년 초 BNK자산운용은 서울 여의도 BNK금융타워(옛 삼성생명빌딩)를 매입했으나 정작 파이낸스타워로 사옥을 이전해야 했다. 두 건물은 빌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자본시장법 85조 '고유계정과 신탁계정 간 거래 금지'에 따른 조치다. 1990년대 투신사들이 고유계정과 신탁형 저축계정 간의 불법 편출입을 통해 우량자산은 회사에, 불량자산은 고객에게 넘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펀드 간 자전거래, 고유자산과 펀드 간 거래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 합리적으로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부동산 펀드가 투자한 건물에 운용사가 입주할 수 없다. 빌딩 임대료(고유재산)를 자사 펀드에 내는 것이 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해당 규정에 따라 KB자산운용은 2015년 여의도 유진투자증권빌딩(현 KB금융타워)을 매입하고도 사옥 이전을 포기한 바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관련법에 따라 2016년 서울 광화문 센터원빌딩에서 나왔다. 이 외에 대신자산운용, 베스타스운용 등 부동산 펀드를 운용하는 여러 자산운용사도 비슷한 이유로 사옥에 입주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었다.
정책의 일관성도 없어 '이중잣대'란 얘기까지 나온다. 해당 사항은 부동산 펀드에만 적용되고 리츠는 예외여서다. 리츠는 '자본시장법'하의 펀드와 달리 '부동산투자회사법' 적용을 받는다. 여기에는 이런 규제가 없다. 운용사가 리츠로 빌딩을 매입해 입주하면 합법이고, 부동산 펀드로 매입해 입주하면 불법인 셈이다.
자산운용업계는 불필요한 규제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펀드로 건물을 매입한 운용사가 다른 입주자와 똑같이 임대료를 낸다면 해당 펀드는 공실률이 줄어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반 펀드 투자자를 보호하고,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자본시장법 85조의 취지에 더 맞는다는 견해가 많다.
말로만 선진금융을 외칠 게 아니라 이제라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부터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해당 문제와 관련해 자산운용사들은 지금도 자기 건물은 비워둔 채 셋방을 전전하고 있다. 현 시대와 맞지 않는 낡은 규제가 10년 넘게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이를 방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결과다. 최첨단의 선진 금융을 외치는 자본시장 업계에서 불합리한 규제는 속히 철회해 운용사는 물론 투자자들의 이익 개선에도 앞장서야 할 것이다.
kakim@fnnews.com 김경아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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