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따뜻했던 가족애가 인간 고르비의 바탕이었다. "아버지가 전쟁터에 갑자기 끌려가느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양복을 어머니가 내다 팔아 옥수수를 샀다. 이를 눈치챈 동네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부은 몸으로 대문 앞에 서 있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한동안 끙끙 앓다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줘서 돌려보내셨다(자서전 '선택')."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고르바초프는 "러시아 문학"이라고 답했던 사람이다.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를 보라. 인간의 심성에 대해 그토록 심오한 통찰을 할 수 있다니!" 그는 애초부터 스탈린 같은 비정한 권력자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대학 댄스파티에서 만난 부인 라이사 여사를 향한 애틋함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지역 농업전문가에서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다시 얼어붙은 제국을 녹여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꿨던 고르바초프가 8월 3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 서구를 향해 선 동구,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해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가 이끈 개혁개방의 결과물이다. 공과를 두고 조국 러시아와 서방세계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그의 서거 소식에 서구 지도자들은 "지칠 줄 모르는 평화 옹호자를 잃었다"며 일제히 애도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