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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인술(仁術)을 베푸니 결국 〇〇〇〇 숲을 이루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03 06:00

수정 2022.09.05 10:14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야채박록과 본초강목에 그려진 '살구. 행(杏)'
야채박록과 본초강목에 그려진 '살구. 행(杏)'

때는 중국 삼국시대로 오(吳)나라 시절에 동봉(董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동봉은 후관현(候官縣)에 살았는데, 나이 40세 정도에 후관의 장(長)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과 일할 도리를 잘 알지 못해서 관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난 후 동봉은 다시 다른 직책에 부임받아 후관을 지날 일이 있었다.


동봉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과거부터 함께 있었던 관리들이 마중 나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여타 관리들은 모두 늙었지만 동봉의 얼굴은 여전했다. 그때 관리 중 한 명이 동봉에게 물었다.

“그대는 도(道)를 얻은 것인가? 내가 옛날 그대를 보았을 때도 지금의 얼굴이었고 나는 이미 머리가 희어졌는데 그대는 여전히 젊으니 어째서인가?”라고 말이다.

동봉이 답하기를 “우연일 뿐입니다.”라고 했다. 단지 우연이라고 답하니 더 이상 캐물을 수도 없었다.

동봉은 의원이기도 해서 의술에도 능했다. 당시 마을에는 죽은 지가 이미 3일이 된 사섭(士燮)이란 자가 있었다. 사섭의 장례를 치르기 전에 동봉은 우연치않게 사섭을 관형찰색(觀形察色)할 기회가 있었다. 관형찰색이란 얼굴의 형태와 안색을 보고서 병세를 판단하는 진찰방법이다.

동봉은 “사섭은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기혈(氣血)이 막혀 있을 뿐입니다.”라고 하면서 급히 환약 3개를 조제해서 물에 으깬 후에 사섭의 입에 넣었다.

이어 곧바로 주위 사람들에게 사섭을 일으켜 세워 머리를 받쳐 들게 했다. 사섭은 죽은 듯해서 으깬 환약은 단지 입안에만 머물 뿐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사섭의 손발이 움직이는 듯하더니 안색이 점차 돌아왔다.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동봉은 “입안의 혀는 심장의 기운을 담고 있습니다. 이 환약의 기운이 혀와 함께 혀를 감싸고 있는 설하청근 등의 혈맥으로 흡수되어 심장의 막힌 기혈이 뚫린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일이 있고서 사섭은 하루 정도 지나자 일어나 앉을 수 있었고, 4일 후에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섭에게 “당신을 동봉이 살렸습니다.”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사섭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죽었을 때는 갑작스러워 꿈결 같았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 10여 명이 보이더니 와서 나를 데리고 수레에 태워 떠났습니다. 그리곤 커다란 붉은 문으로 들어가더니 곧장 옥에 가두었죠. 희미하게 문밖의 사람이 말하는 것이 들렸는데, ‘태을이 저승사자를 보내 사섭을 데려왔다’고 했죠. 저는 그 말을 듣고서 ‘아~ 내가 죽은 게로구나’하고 낙담했소. 그러더니 한참 후에 끌려 나와서 보니 말이 끄는 마차가 있었는데, 지붕은 붉었고 거기에는 세 사람이 함께 수레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부절(符節)을 가지고 나를 불러 수레에 오르게 했는데, 내가 오르려는 순간. 바로 그때 입안에서부터 화한 기운이 온몸으로 찌릿하고 퍼지더니 갑자기 깨어났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동봉의 의술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구나’하고 감탄했다.

사섭은 자신을 깨운 것이 동봉의 의술 때문인 것을 알고서는 동봉에게 “선생님 덕분에 제가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으면 좋을런지요?”하고 물었다.

동봉은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당신은 죽을 사람이 아니었기에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제 의술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라면서 사양했다.

사섭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의 정원 한 가운데 누각(樓閣)을 지어서 동봉을 쉬게 하면서 산해진미를 차려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섭은 “의원님은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으신지요? 제가 매일같이 차려내겠습니다.”라고 물었다.

그런데 동봉은 “저는 단지 마른 대추 몇 개와 약간의 술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동봉은 그 이외의 다른 음식은 말하지 않았다.

사섭은 의아해하면서도 하루 세 번 동봉에게 말린 대추와 술을 대접했다. 동봉이 대추를 먹고 술을 마실 때면 매번 화려한 색의 비조(飛鳥)가 날라와서 함께 먹고 다 먹고 나면 다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 새는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았다. 멀리서 보기에 누각에 앉아 있는 동봉의 모습은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

동봉은 사섭의 세운 누각에서 1년 정도 머물다 다시 길을 떠났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동봉은 예장(豫章)으로 돌아와서 여산(廬山) 아래에 거처했다. 그곳에서 동봉은 약방을 열어 환자들을 돌봤다. 가벼운 상한병(傷寒病, 감기)에서부터 중풍으로 팔다리가 마비된 한자뿐만 아니라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으며 심통(心痛, 심장병)으로 쓰러진 중병의 환자들도 살려냈다.

약방에는 많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런데 이상하게 환자들은 별다른 치료비를 내는 일이 없었다. 대신 며칠 후 다시 오더니 약방 주위에 살구나무를 심는 것이 전부였다. 동봉은 환자들을 치료하고서 돈 대신 살구나무를 심도록 한 것이다. 가벼운 병은 한 그루를 심게 했고, 중병이 나은 사람은 다섯 그루를 심게 했다. 그나마 살구나무를 심을 능력조차 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사람들은 동봉에게 “왜 하필이면 살구나무를 심게 하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동봉은 “살구는 사람을 살리는 열매요. 살구는 행실(杏實)이라고 하고 살구씨는 행인(杏仁)이라고 하는데, 폐와 대장을 윤택하게 하고 식적(食積)을 삭이고 막힌 기를 흩어 냅니다. 행인을 복용하면 총명하게 하고 늙어도 튼튼해지며 힘을 써도 피로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살구씨는 생으로 먹으면 안되고 볶아서 먹어야 하며 씨가 두 개인 것은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섭취를 금해야 합니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동봉은 약방 옆에 초가집 창고를 하나 지었다.

그러면서 “만약 살구를 얻고 싶은 사람은 나에게 알릴 필요 없이 그저 곡식 한 되를 가져다 창고 안에 두고 직접 가서 살구 한 되를 따가지고 가면 되오.”라고 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감사를 표하면서 가지고 온 곡식의 양만큼만 살구를 따갔다. 그런데 간혹 곡식은 적게 가져와서 살구를 많이 가져간 자도 있었고, 곡식도 없이 살구만을 훔쳐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동봉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설령 도둑이 잡혀 왔을지라도 다시 되돌려 보냈다.

그런데 한번은 곡식을 조금 놓고 많은 살구를 가지고 도망가는 도둑을 숲에서 여러 마리의 호랑이가 쫓았는데, 도둑이 길옆으로 넘어져서 살구가 쏟아졌다. 도둑은 급히 살구를 쓸어 담아 다시 도망갔는데 집에 가보니 곡식의 양과 똑같았다. 간혹 어느 살구도둑은 집까지 무사히 도착하더라도 호랑이가 물어 죽이기도 했다.

이러한 기인한 소문이 나면서 ‘호랑이가 살구를 지킨다’는 말이 돌았다. 이러한 소문 이후로 살구도둑이 없어졌다. 그래서 옛날에부터 깊은 산중으로 들어갈 때는 살구나무로 지팡이를 삼으면 호랑이가 피하고, 살구나무로 만든 목탁을 치면서 산속을 지나는 스님은 호랑이가 공격하지 않는다는 설화가 생겼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약방 주위로 살구나무 숲을 이루었다. 살구나무 숲에는 산 중의 온갖 새들과 짐승들이 와서 놀았고, 일부러 잡초를 뽑지도 않았는데 잡초도 나지 않았다. 또한 온 나라에 역병(疫病)이 돌아도 살구나무 숲 인근에까지는 역병이 도지지 않았다.

동봉은 매년 살구 대신 곡식을 얻으면 다시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었고, 이렇게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태준 것이 1년에 2만여 명이나 되었다. 동봉의 의술은 바로 인술(仁術)이었다. 이후로 살구나무 숲을 뜻하는 행림(杏林)이란 단어는 인술을 베푸는 의원을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의부전록. 동봉편> 按神仙傳, 董奉者, 字君異, 候官人也. (중략) 奉居山不種田, 日爲人治病, 亦不取錢. 重病愈者, 使栽杏五株, 輕者一株, 如此數年, 得十萬餘株, 鬱然成林. (중략) 奉每年貨杏得穀, 旋以賬救貧乏, 供給行旅不逮者, 歲二萬餘人. 今廬山杏林, 乃其遺蹟.(신선전에 의하면 동봉은 자가 군이이며 후관사람이다. 중략. 동봉은 산에 살면서 밭을 일구지 않았고 날마다 남의 병을 치료했으나 돈을 받지도 않았다. 중병이 나은 사람에게는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심게 하고 가벼운 병이면 한 그루를 심게 했는데, 이렇게 몇 년 지나니 10만여 그루가 되어 울창하게 숲을 이루었다. 중략. 동봉은 매년 살구를 팔아 곡식을 얻으면 다시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빌려주어 구제했으며 떠돌이와 부족한 사람들에게 보태준 것이 1년에 2만여 명이었다. 지금도 여산에 살구나무 숲이 남아 있다.)
< 본초강목> 杏實. 曝脯食, 止渴, 去冷熱毒. 心之果, 心病宜食之. 杏仁. 主溫病脚氣, 咳嗽上氣喘促. 除肺熱, 治上焦風燥, 利胸膈氣逆, 潤大腸氣秘.(살구는 햇볕에 발려서 포를 만들어 먹으면 갈증을 멎게 하고, 냉열독을 제거한다.
심장에 알맞은 과일이므로 심병이 있으면 먹어야 한다. 살구씨는 온병으로 인한 각기와 기침이 나면서 기가 위로 치받아 숨이 차는 증상을 치료한다.
폐열을 제거하고 상초의 풍으로 건조한 증상을 치료하며 흉격에서 역행하는 기를 소통시키고 대장의 막힌 기를 촉촉하게 해 준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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