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라면 조리 과정·윷놀이를 3분짜리 국악으로 풀어봤더니…

뉴스1

입력 2022.09.04 06:31

수정 2022.09.05 11:27

지난 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내 연습실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이음 음악제-2022 3분 관현악'의 주요곡을 연습하는 모습. (국립극장 제공)
지난 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내 연습실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이음 음악제-2022 3분 관현악'의 주요곡을 연습하는 모습. (국립극장 제공)


'3분 관현악' 무대에서 '辛라면 협주곡-라면'을 선보이는 이재준 작곡가가 연습에 앞서 곡을 소개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3분 관현악' 무대에서 '辛라면 협주곡-라면'을 선보이는 이재준 작곡가가 연습에 앞서 곡을 소개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3분 관현악'에 참가한 작곡가 홍민웅(사진 왼쪽부터), 이재준, 최한별, 손일훈. (국립극장 제공)
'3분 관현악'에 참가한 작곡가 홍민웅(사진 왼쪽부터), 이재준, 최한별, 손일훈. (국립극장 제공)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3분'이라는 시간을 떠올리니 카레, 라면, 햇반 등이 떠오르더라고요. 그중에서도 라면이 쉽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즐기는 'MZ세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곡을 쓰게 됐어요."

라면을 끓이는 과정을 음악으로 어떻게 풀었을까. 또 연주자들이 윷놀이의 '윷', '말'이 돼 실제 놀이를 하듯 연주하는 곡은 어떨까.

낯설지만 신선하고, 난해해서 더 궁금한 국악 공연이 오는 3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창작음악 축제인 '이음 음악제-2022 3분 관현악'을 통해서다.

2019년 국립극장이 처음 선보인 '3분 관현악' 공연은 강렬한 소통을 선호하는 시대 흐름에 맞춘 것이다. 젊은 작곡가 10인은 각자의 음악적 개성을 담은 3~5분 분량의 국악관현악 창작곡을 이번 무대에서 선보인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곡은 서울대 국악과 출신인 이재준 작곡가의 '辛라면 협주곡-라면'이다.

지난 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내 연습실에서 만난 이 작곡가는 "라면을 먹는 행위에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래서 곡을 쓴 방식도 적나라하다"며 "'3분 관현악'은 평소 선호하는 음악을 표현하기 좋은 플랫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실제 라면을 끓이는 행위에 집중한다. 라면 조리 과정 전반을 국악기로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가스 불을 켜고 물을 끓이는 과정은 북과 피리의 긴박한 연주로 담는 식이다. 이어 느린 템포의 연주로 라면이 익어가는 기다림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작곡가는 연습에 앞서 연주자들에게 "마지막 악장에서 귀에 익숙한 광고 로고송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최고의 감정으로 연주해 달라"는 주문을 곁들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실제 공연에선 라면 조리 과정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도 선보인다. 무대 위 화기 사용이 어려워 실제 라면을 끓이는 것은 아니지만, 퍼포머 역시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기에 일종의 협연인 셈이다. 이 유례없는 퍼포먼스는 이 작곡가의 지인이자 가야금 연주자인 박소희가 맡는다.

이 작곡가는 "라면이 하나의 악기라고 생각하고 작품에 임했다"며 "무대 위 라면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소음 또한 음악으로 받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윷놀이 결과에 따라 즉흥적으로 곡의 내용이 결정되는 실험적인 무대도 준비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 후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의 석사·최고과정을 거친 서양음악 작곡가 손일훈의 '윷놀이 모 아니면 도'다. 이 작품은 그가 직접 고안한 '음악적 유희 시리즈'(Musical Game Series)의 하나다.

피리 연주자는 윷, 대금 연주자는 움직이는 말의 역할이다. 청·홍팀으로 나눠 진행되는데 피리 연주자 4명이 가만히 있느냐, 연주하느냐에 따라 '도·개·걸·윷·모'가 결정된다. 2명이 연주하면 '개', 3명이 연주하면 '걸'이 되는 식이다.

타악기 연주자들은 결과가 나올 때마다 '걸이요!', '잡았다!', '업는다!' 등의 추임새로 흥을 더한다. 연습을 하는 동안에도 연주자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손 작곡가는 국악을 통한 새로운 실험에 즐겁게 임했다. 그는 "서양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국악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좋은 기회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 좋았다"며 "국악과 윷놀이를 결합하면 격렬한 음악이 나오겠다고 생각했고, 연주자들이 놀이 자체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을 자율에 맡겼는데 즐기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습실에선 이들의 곡 외에도 최한별 작곡가의 '유니뻐스', 홍민웅 작곡가의 '화류동풍'의 리허설도 진행됐다.

국악 작곡가 10명의 작품을 소개했던 처음 3년 전 공연과 달리 이번엔 서양음악과 국악 작곡가 비율을 5대 5로 맞춘 것도 특징이다.

프로그램 디렉터로 참여한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서양음악을 공부했고, 단 한번도 국악곡을 써보지 않았더라도 특유의 유연성이 있다면 국악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은 "처음 '3분 관현악'으로 발굴한 곡들은 이후 악단의 레퍼토리 공연으로도 연주하고 있다"며 "다음에는 외국인 작곡가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 관련 시리즈를 이어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3분 관현악' 무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오는 22~30일 여는 '이음 음악제'의 마지막 차례다.
22일엔 '비비드: 음악의 채도', 25일엔 '2022 오케스트라 이음', 26일엔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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