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손승환 기자 = "태풍 온다고 해서 새벽 내내 뉴스 틀어놨는데 이번엔 그래도 괜찮아."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했지만 지난 8월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서울 관악·동작 일대는 대체로 평온했다. 다만 집중호우를 겪은 주민들 사이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폭우에 살림 버려 이번엔 체념했는데"…태풍 피한 주민들 '일상회복'
지난 6일 오후 찾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는 호우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이 밀집한 곳인 만큼 태풍에 미리 대비한 흔적이 보였다. 차수판을 설치한 가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골목 곳곳에 있는 배수로도 대체로 깨끗했다. 주민들이 배수구가 넘치는 걸 막기 위해 인근의 낙엽과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치웠다.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만 40년째인 김삼남 씨(82)는 "지난 폭우 때 이불이며 살림을 다 버려서 이번엔 체념했었다"면서 "이번에는 집에 물은 안 들어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지난 집중호우 때 집이 전부 침수됐다. 집 내부는 벽과 바닥 할 것 없이 곰팡이로 가득했다. 두 칸의 방 가운데 한 곳에 한 몸 겨우 누일 크기의 얇은 이불이 깔려 있었다. 젖은 휴지와 수건들은 널브러져 있었고, 남아 있는 가구라고는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신림동에서 7년째 환경공무원으로 일하는 정영인 씨(43)는 "어제 일을 못 해서 오늘 일찍 나왔는데 쓰레기가 평소보다 많은 정도"라며 "주민들도 별다른 피해 없이 평온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날 신림동 주택가에는 다가올 명절 선물을 실은 배송 차들이 다녔다. 현관문 곳곳에 놓여있는 택배 상자가 눈에 띄었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주민, 마당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보였다. 폭우로 온 거리가 물바다가 됐을 때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지난 집중호우 기간 산사태로 옹벽이 붕괴한 동작구 극동아파트에서도 안도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파트 주민 안해순 씨(78)는 "(태풍 소식에) 온 가족이 걱정했다"면서 "지난번에는 전기도 끊기고 따뜻한 물도 안 나왔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괜찮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108동)보다 (옹벽) 앞에 있는 107동과 105동이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토사 붕괴 가능성으로 장기간 대피했다 다시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05동과 107동도 이번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은 모양새다. 태풍이 지나간 6일 오전 이곳 옹벽에는 보수 작업이 재개됐다. 지난번 집중호우보단 비가 적었고,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설치된 대형 천이 붕괴를 막아 추가 피해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동작구청은 지난 27일부터 구조물 안전 점검 결과를 토대로 105동 일부 거주자에게 입주를 허용했다.
◇4가구 중 1가구 차수판 없다…국토부 "재해취약주택 개보수 등 지원"
침수피해가 특정 지역에서 반복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기후위기시대 도시침수 예방대책'에 따르면 서울 침수지역은 공통으로 과거에 침수피해를 겪었고 노후단독 및 반지하 주택이 밀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신림동 일대를 둘러본 결과 차수판이 설치된 반지하 가구는 4가구당 1가구꼴로, 물막이 시설이 아예 없는 곳이 더 많았다. 비닐 등을 임시방편으로 덧대 놓은 곳도 있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연말까지 재해취약주택 거주자를 대상으로 관계부처와 지자체가 합동해 실태를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재해우려구역에 대해서는 즉시 개보수 및 거처 이주를 지원하고 재해취약 주택에 대한 인허가의 강화도 고려한다.
또 취약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하거나 매입이 어려운 주택에는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지원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호우 피해로 인한 주택 개보수는 지자체에서 재난관리기금 등을 통해 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가 나오면 거주자들의 수요에 따라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 지원을 하거나 현 주거지의 안전보강을 지원할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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