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거리두기’ 없는 추석 연휴… "고향으로, 해외로" 설렌 발걸음 [현장르포]

열차역·터미널 귀성객들로 북적
연휴 3017만명 이동… 10% 증가
공항엔 해외로 가는 ‘추캉스족’도
"출발 전에 검사" 선별진료소 붐벼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 버스승하차 플랫폼에서 귀성객들이 버스 승차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날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탑승수속 줄이 길게 늘어섰다. 사진=김동규 노유정 기자

"오랜만에 휴가 나와 집에 가보네요."

8일 오전 11시30분 서울역 플랫폼에서 KTX를 기다리고 있는 전모 상병(23)은 반년 만에 부산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는 군 입대 이후 코로나를 이유로 제대로 휴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 6월 정기휴가가 예정됐지만 본인이 코로나에 걸리며 결국 추석이 돼서야 고향길로 향했다. 전씨는 "아직도 코로나 여파가 있다고 하지만 이제 끝났다고 느낀다"며 "군 입대 이후 제대로 명절을 즐긴 적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거리두기 없는 명절을 맞이해 귀경길은 일찌감치 붐볐다.

귀성객들은 코로나 사태를 잊고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향했다. 일부 시민은 연휴를 맞이해 제주도나 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추석 귀경객 10% 늘어

이날 서울역에는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으로 평소보다 2배 이상 많은 시민이 기차를 기다렸다. 식당가에는 '무료 캐리어 보관함' 등을 설치해 식당 내 혼잡도를 줄였다. 낮 12시30분 대구행 KTX를 기다리고 있는 이모씨(28)는 "지난 설 연휴 때 코로나가 심해져 고향을 가지 못했다"며 "어차피 가족 모두 코로나에 걸렸기에 편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말했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귀경객은 지난해 대비 대폭 상승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추석 기간 총 3017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루 평균 603만명이 이동하는 것으로, 지난해 추석(546만명) 대비 10.4% 증가하는 것이다.

같은 시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저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바삐 탑승장을 향해 이동하거나 의자에 앉아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다수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일부 사람은 코끝에 마스크를 걸치고 있거나 기자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자 마스크를 벗어보이는 등 코로나19 공포에 둔감해진 모습이었다.

공항 내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며 취식 후에는 다시 마스크를 껴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취식하고 있지도 않은데 마스크를 내린 채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 일부 사람도 눈에 띄었다.

박모씨(49)는 4년 만에 12인 대가족을 모두 모아 여행을 간다고 했다. 박씨는 "이미 지난 4일 성묘도 다녀와 차례도 지내고 왔다"며 "사돈 식구가 사는 추자도로 휴양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낚싯대와 차양모자까지 챙긴 박씨는 연휴에 휴가를 붙여 오는 13일까지 6일간 놀고 올 계획이라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정모씨(55)는 두 아들과 함께 제주도로 '먹방투어'를 떠나기 위해 김포공항을 찾았다. 원래 고향은 경기도이지만 차례를 지내지 않아 고향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는 "설렌다. 어제 오후부터 마음이 들떴다"며 "계속 아들이랑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여행을 못 갔는데 작년부터 3박4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해서 간다"고 말했다.

연휴 시간을 이용해 해외로 향하는 여행객도 눈에 띄었다. 여자친구와 태국행 비행기에 탄 박모씨(37)는 "웨딩촬영을 위해 추석 기간을 이용했다"며 "3년 만의 해외여행이라 매우 설렌다"고 말했다.

■코로나 위험에 선별진료소도 북적

서울고속버스터미널도 상황은 비슷했다. 연휴 하루 전임에도 불구하고 금색 보자기에 싸인 선물상자를 쥔 시민들이 고향길로 향했다.

충남 부여로 귀성길에 오르는 30대 회사원 박모씨는 "부모님을 하루빨리 뵙기 위해서 회사에 휴가를 냈다"며 "부모님께서 '언제 결혼하느냐'고 성화하시는 것은 지겹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빨리 뵙고 나면 업무로 인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MZ세대들은 귀성을 긴 휴가라고 여기고 있었다. 20대 회사원 박모씨는 "부모님께서 '결혼해라'라는 이야기를 해도 '집밥', 특히 자취생이 잘 해먹기 힘든 나물 등을 챙겨주셔서 좋다"면서 "20대 중·후반이 되니 집안 어르신들도 다 돌아가시고 해서 명절이어도 집안이 조용하다.

휴가 온 기분이 든다"고 밝혔다.

귀경길을 대비해 선별진료소에 들른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서울 동작구 임시선별진료소에서 만난 설모씨(25)는 "할머니집에 내려가는데 컨디션도 안 좋아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며 "다행히 음성판정을 받아 추석 당일 아침에 내려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mail] 이진혁 노유정 주원규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