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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홍동백서 조율이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08 18:04

수정 2022.09.08 18:04

최영갑 성균관유도회 총본부 회장(가운데)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최영갑 성균관유도회 총본부 회장(가운데)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어릴 때부터 명절 차례와 기제사를 지냈지만 장남이 아니다 보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예법에 무신경했다. 막상 예기치 않게 제사를 주관하게 되자 당황스러웠다. 동영상을 찍어 놓지 않은 게 후회됐고, 제사상 준비며 차림은 물론 지방을 작성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제사는 뒤죽박죽이 되기 일쑤여서 늘 조상님과 부모님께 송구했다.

그동안 불문율로 알았던 홍동백서, 조율이시, 좌포우혜, 어동육서, 두동서미가 모두 근거 없는 예법으로 드러났다.
1200년 전 중국 송나라의 주자가 쓴 의례서인 '주자가례'에도 나오지 않고, 이런 예법이 언제 생겼는지조차 불분명하다고 한다. 심지어 팥, 마늘, 빨간 고춧가루,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 데 사용하는 것들이니 차례상에는 올리지 말라는 것도 근거 없단다.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과 비늘 없는 생선은 천한 음식이므로 제사상에는 올리지 말아야 된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년 돌아오는 명절 차례와 제삿날을 고혈을 짜는 전쟁터로 만들었던 탕국 끊이기, 생선 굽기와 전 부치기, 나물 무치기도 필요 없다니 말문이 막힌다. 시장에서 구입해도 될뿐더러 전 자체를 아예 올리지 않아도 문제없다고 한다. 지방을 쓰기 힘들다면 사진을 세워놔도 상관없으며, 차례 지내고 성묘 가는 게 힘들면 차례는 생략하고 성묘만 다녀와도 된다. 그 대신 가족여행을 떠나도 무방하다고 한다.

추석을 앞둔 지난 5일 우리나라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가 발표한 간소화된 '차례상 표준안'을 보면 그동안 유교예법으로 알고 지켜왔던 제사법은 대부분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였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라는 속담이 진리였다. 속아 산 기분이다. 왜 이제서야 간소화 차례상을 내놨는지 원망스럽다.
제사 때마다 반복했던 헛수고와 낭비 그리고 불화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늦었지만 올 추석부터 차례와 제사는 즐거운 가족 파티 타임이다.
'명절 고역'에 아듀를 고한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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