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명절이지만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목소리라도 제발 듣고 싶어요."
추석 연휴 첫날인 9일 오전 10시쯤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 지원센터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출신 김 다찌아나씨(51·여)는 우크라이나에 남겨진 가족 생각에 눈시울부터 붉혔다.
김씨는 2개월 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피하기 위해 고려인마을의 경비 지원을 받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재는 광주에서 아들, 딸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전쟁 여파로 피난 오지 못한 시어머니와 남편 생각에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다고 했다.
전쟁 당시 시어머니는 고령에다가 거동이 불편했고 50대 남편 역시 고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입국 초기에는 영상통화로나마 남편과 시어머니의 생사를 확인했지만 최근에는 연락마저 끊겨 생사 여부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연락이 두절된 시기는 지난달. 김씨는 언론보도를 통해 일가족이 오순도순 머물렀던 도시 헤르손이 전쟁통으로 폐허가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씨는 눈에 맺힌 눈물을 휴지로 닦아내더니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연락이 끊기니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며 "혹여나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안좋은 일이 생겼을까 두렵고 걱정된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영상통화를 했던 2개월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모든 게 다 괜찮을 것'이라던 남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이 지난 7월 피난차 광주에 온 한라리사씨(50·여)는 명절 분위기에 고향이 더욱 그리워진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는 한국의 명절 격인 축일이 있는데, 축일 당일에 친지 가족과 모여 장만한 음식을 서로 먹여주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씨는 설명했다.
한씨는 "한국 명절이 오니 축일 때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하루빨리 고국에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씨는 SNS를 통해 지인들과 연락을 이어가고 있지만, 전쟁으로 고향이 폐허가 돼가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미어진다고도 했다.
한씨는 "한평생 살아온 공간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며 "우리 가족의 터전인 만큼 흔적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토로했다.
또 "힘든 시간이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광주로 피난 온 우크라이나 피난민들과 서로 의지하며 지내겠다"면서도 "다음 명절은 꼭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 부모님의 밥이 그립다"고 소망했다.
한편 고려인마을은 추석을 맞아 지난주 '추석 한마당 행사'를 열었다. 고려인마을 주민 200여명이 참여해 각종 공연을 즐기고 추석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정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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