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명품재단 사로잡은 93년생 작가... 돈이 중심이 된 사회를 비판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12 18:57

수정 2022.09.12 18:57

맥락을 알고보면 더 재밌는 전시 2편
(2) 류성실 개인展 불타는 사랑의 노래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최연소 수상자
미디어쇼 방식으로 이분법적 질서 깨
'사랑해'라는 한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듣는 이(감상자)의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영화 '미저리'에서처럼 팔과 다리가 의자에 묶인 채 있는 한 남성에게 한 여성이 망치를 들고 사랑해라고 말한다. 혹은 영화 '타이타닉'에서처럼 침몰해 가는 배에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마지막 구명조끼를 건네며 사랑해라고 말한다. 미술관에 각각 피 묻은 망치와, 구명조끼 하나를 전시해 놓고 제목을 똑같이 '사랑'이라고 지었을 때 맥락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차이는 클 것이다. 맥락을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전시 2편을 소개한다.


류성실 개인전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fnDB
류성실 개인전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fnDB
서울 강남구 에르메스 매장 내부 지하에는 '아뜰리에 에르메스'라는 미술 전시관이 있다. 지난 7월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최연소 수상자인 류성실 작가의 개인전 간담회가 열렸다.

에르메스 재단은 2000년 제1회 수상을 시작으로 2021년(제19회)에는 류성실 작가를 선정했다. 지난 2016년부터는 매년 수상에서 격년제 수상 방식으로 전환됐다. 재단은 심사평을 통해 "류성실 작가는 일종의 '1인 미디어 쇼'를 통해 예술과 비예술, 실제와 허구 등 기존의 이분법적 질서를 교란시키는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장례식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벽면 형태의 작품, 화장장, 장례식 화환 등이 눈에 띈다. 작품 자체만 처음 보는 관람객은 어리둥절하기 마련이다. 류성실의 작품은 작품 하나하나로서 예술성보다 그가 창조해 낸 예술 세계와의 '관계와 맥락'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류성실 작가는 1993년생으로 2018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그의 첫 전시는 오프라인 미술관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2020년 첫 공개된 '대왕트래블2020'이다. 류성실은 미디어 아트를 통해 탐욕적인 사업가(여행사)를 대표하는 '이대왕'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에르메스 개인전의 경우 이대왕이 그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대왕 애견상조'라는 반려견 화장장을 만드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장례장 한쪽 벽면에서는 이대왕이 직접 반려견을 위한 장송곡을 직접 연주하는 영상이 나오기도 한다. 류성실은 이대왕 외에도 BJ체리장이라는 다른 인물도 만들어 지속적인 서사를 진행해 왔다.

탐욕을 상징하는 이대왕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여행누군가의 '죽음'이 돈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사람과 달리 반려견은 생애주기가 짧고 회전율도 높은 점을 고려했다.
애견 장례사업을 시작하며 거짓 눈물도 쏟아낸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시각을 가져왔던 류성실 작가가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명품 재단의 미술상을 수상하고 전시하는 상황의 아이러니 역시 그의 작품 세계 속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류성실 작가는 "전시전 제목이 '불타는 사랑의 노래'인데 요즘 유행하는 '불멍'이라는 말처럼 불난 집에 모여드는 구경꾼과 그 불구경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 계산기를 뚜드리는 또 다른 사람을 상정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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