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폭락장에 대출금까지 날렸어요" 개인회생 신청 절반이 2030 빚투족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15 05:00

수정 2022.09.15 09:16


통화긴축으로 증시가 급락하면서 2030세대의 개인회생 신청이 늘고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파산신청 창구. /뉴시스
통화긴축으로 증시가 급락하면서 2030세대의 개인회생 신청이 늘고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파산신청 창구. /뉴시스
"이 정도 떨어지면 '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평생모은 돈을 날리고 말았죠". 14일 기자가 만난 30대 직장인 석모씨는 휴대폰의 증권 계좌를 열어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석씨는 올 상반기에 그동안 주식투자를 통해 벌었던 1억원 중 상당수를 날렸다. 글로벌 경제를 강타한 인플레이션 심화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 올리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주가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파이낸셜뉴스] 나름 주식에 자신이 있던 석씨는 주가 하락세가 지속되자 '기회는 이때다'라며 신용대출까지 끌어모으며 '저점매수'에 나섰다. 본전 생각에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난 8월까지는 어느정도 수익이 좋았지만 고작 한 달 새 주가가 맥을 못추면서 급기야 대출금마저 갉아먹고 말았다.

석씨는 "증권 전문가들이 저점은 지났다면서 매수를 권했다"며 "평생 모았던 돈도 날리고 빚마저 늘었다"며 토로했다. 아무리 증권사를 탓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고물가를 잡기 위한 주요 국들의 긴축재정 기조가 뚜렷해지면서 국내·외 증시가 폭락, 빚투로 대박을 노렸던 2030 청년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물가 상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자산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던 '빚투족'들의 개인회생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주식으로 한 방을 노렸던 청년세대의 개인회생 신청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점이라는 증권전문가 말 믿고 '물타기'

인플레 공포에 미국 증시가 폭락한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 및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인플레 공포에 미국 증시가 폭락한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 및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지수는 종가 기준 2411.42포인트로 올 들어서만 586.9포인트(-19.02%)가 빠졌다. 코스닥 지수도 종가 기준 782.93포인트로 같은 기간 256.04포인트(-24.28%) 폭락했다. 특히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의 8월 CPI(소비자물가지수)가 시장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으면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이 -5.16%나 빠지면서 코스피와 코스닥도 2% 가까이 급락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상승할 경우 가계 실질임금은 감소한다는 뜻으로, 인플레이션의 변동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수다. 글로벌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물가를 잡기위해 주요 국가들이 기준금리(정책금리)를 연신 인상해 주식시장이 찬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다.

주식 폭락으로 빚투 선봉장에 섰던 2030 청년세대가 멘붕에 빠졌다.

7월 개인회생신청 2030세대가 54%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신규 주식 투자자 및 20대이하 투자자의 75%는 신용융자를 통해 손실을 봤다. 빚을 내 투자했지만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는 말이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자에게 "적극적으로 신용 거래를 사용하는 20.30대 이하의 젊은 투자자들의 수익률이 낮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연초부터 이어진 폭락장으로 인해 청년층의 개인회생 신청자도 증가추세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에 의하면, 20대 개인회생 신청자의 경우 지난 2019년 1만307건에서, 2020년 1만1108건, 2021년 1만1907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 7월 개인회생 신청 건수의 경우 2030세대가 차지하는 개인회생 신청 비율도 54%(836건)로 치솟았다. 올해 상반기 2030 비율이 47.9%였던 점을 고려하면 6%포인트 늘어났다.

청년층 채무액도 가파르게 늘었다. 지난해 채무액은 5년 전 대비 32.9%포인트 증가한 158조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에 대해 한국금융연구원은 2030세대 다중채무 규모 급증 원인을 코로나19 확산 전후 저금리 상황의 주식·가상자산 투자 열풍으로 분석했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주식과 코인 등에 투자했다가 최근 고금리 추세가 이어지면서 채무액이 늘었다는 얘기다.

길잃은 청년들 "돈 불릴데가 주식밖에 없어요"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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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장속에 모은 돈과 대출금까지 날린 청년층이 늘어나면서 최근 상담센터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평생 월급을 모아도 집을 사기 어렵고,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통해 소위 대박 터뜨리기에 나선 젊은 층이 많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더이상 통용되기 어려울 만큼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 데다 내집 마련과 행복한 삶을 위해 너도나도 빚을 내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특히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주식투자 중독’ 치료를 위해 센터를 찾는 상담자가 2019년 591명에서 지난해 1627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다. 여유자금을 활용한 건전한 투자패턴이 아니라, 한 방을 노린 무모한 투자행위가 거의 도박중독 현상과 유사하다는 게 센터측 설명이다.

센터 관계자는 "투자 중독에 빠져 센터를 찾는 젊은 세대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며 "본인은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가족의 권유로 센터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에도 불구하고 주식투자를 '인생역전'의 기회로 보는 경향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회사원 양모(34)씨는 "월급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며 "최근에 아무리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도 평범한 사람들은 도저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가격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장인 변모(36)씨는 "주변에서 주식 투자에 진절머리를 낸 동료들이 많다"면서도 "그럼에도 평생 공부하고 노력하는 게 주식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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