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전보발령을 막아달라'고 읍소하는 아파트 경비원과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간 대화를 몰래 녹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가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B씨와 아파트 경비원 C씨의 대화 내용을 휴대전화로 몰래 녹음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C씨는 다른 아파트로 전보발령이 난 상태에서 B씨에게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라며 도와달라고 읍소하고, B씨는 '알겠다'고 대답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 과정에서는 B씨와 C씨 사이의 대화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하는지, 또 이를 A씨가 인식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A씨 측은 재판에서 "B씨와 C씨의 대화는 아파트 상가 입구 바로 앞에서 이뤄졌고, 이 장소는 지하철 역사와도 가까워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개된 장소인 만큼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A씨가 녹음한 대화는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고, A씨 역시 이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A씨 측은 또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B씨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C씨를 다른 아파트로 전보발령시켰고, A씨는 이런 행위로부터 C씨를 보호하고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해 녹음한 것으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녹음한 대화는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되지 않은 타인의 대화'를 녹음한 것에 해당하고, A씨도 대화의 비공개성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그 대화를 녹음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A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들에 대한 직접적인 인사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점, 회장인 B씨 역시 이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B씨와 C씨 간 대화가 사적 대화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대화가 이뤄지게 된 경위, 대화 당사자, 대화 내용 등에 비춰 볼 때 C씨는 입주자대표회의에 공식적으로 전보발령을 막아달라고 청원했다기보다는, 사적으로 전보발령을 막아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B씨가 C씨 요청에 답변한 것을 두고 입주자대표회장으로서 공식적인 행위를 한 것과는 그 행위의 성격이나 일본 공중에 대한 공개성 여부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대화가 있었던 장소는 상가 1층 입구로, 여러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로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그러나 대화가 있었던 장소가 상가 입구라는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인원들이 입구를 거쳐서 통행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그곳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대화를 공개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을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와 C씨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최대 거리인 가청거리 내에서 '누군가 이 대화를 우연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반면 이를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대화가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는 장면이라거나, C씨에 대한 전보발령 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자료가 아님은 명백하다"며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그 대화를 긴급하게 녹음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타인 간의 사적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행위는 헌법상 기본권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이므로 사사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A씨의 범행이 일회성으로 그쳤고, 녹음 시간도 약 15초 남짓으로 매우 짧은 점, 대화 내용에 비춰 대화의 비밀성이나 그로 인해 침해되는 통신비밀 보호나 사생활의 비밀 정도가 중대하다고 보기 어렵단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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