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 70년간 영국을 다스리며 현대 세계사에 지대한 발자국을 남겼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19일(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됐다. 이번 행사에는 미국 등 서방 정상과 왕족 등 500명을 포함, 약 2000명이 참석했다.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시민들도 약 100만명이 모인 것으로 추정됐다.
BBC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날 장례식은 오전 11시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사원에서는 여왕의 96년 생애를 기리며 1분에 1차례씩 종소리가 울렸다. 여왕은 1952년에 25세의 나이로 왕위를 물려받았으며 즉위 1년 뒤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그는 1947년 같은 장소에서 남편 필립공과 결혼식을 올렸다.
장례식을 집전한 데이비드 호일 웨스트민스터 사원 사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결혼하고 대관식을 올린 이곳에 우리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의 긴 생애와 헌신을 추모하고 그를 주님의 자비로운 품속으로 보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였다"고 말했다. 이날 장례식에서는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설교하고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성경을 봉독했다.
장례식 막바지인 오전 11시 56분부터는 영국 전역에서 2분 동안 묵념을 시작했다. 런던의 히드로 공항은 같은날 오전 11시 40분부터 30분 동안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중단했다. 19일 국장 당일 영국 전역에는 임시 공휴일이 선포되어 증시와 주요 소매점과 대중 시설들이 문을 닫았다.
여왕의 관은 장례식을 마친 뒤 해군 포차(砲車)에 실려 버킹엄 궁을 거쳐 하이드파크 인근 웰링턴 아치까지 운구됐다. 하이드파크에서는 여왕의 관이 이동하는 동안 예포가 발사됐다. 관은 웰링턴 아치에서 운구차로 옮겨져 버크셔주 윈저의 윈저성으로 향했으며 이날 오후 왕실 가족들의 소규모 매장 예식 이후 윈저성 납골당으로 옮겨졌다. 여왕은 지난해 4월 먼저 떠난 남편 필립공 곁에 묻혔다.
이날 장례식에는 세계 각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나루히토 일왕을 포함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주요 유럽 지도자와 영연방 관계자들이 모두 모였다. 중국은 공산당 서열 8위인 왕치산 국가 부주석을 파견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바이든은 이미 18일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여왕을 조문하고 성호를 그었으며, 과거 영국 유학 시절 여왕과 인연이 있었던 나루히토 일왕 역시 일본왕실 역대 2번째로 외국 정상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나루히토 일왕은 18일 영국왕실이 진행한 외빈 연회에 참석, 윤 대통령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장례식에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올레나 젤렌스카 영부인도 참석했다. 러시아와 러시아에 동조한 벨라루스 정상은 초대받지 못했다. 영국 왕실은 이외에도 지난해 2월부터 쿠데타 군부가 지배하는 미얀마나 아프가니스탄, 북한, 이란 등에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초대장을 받았지만 2018년 언론인 암살사건으로 서방과 불편한 관계를 의식해 다른 고위 왕족을 보냈다.
이날 런던 중심부에는 여왕의 운구 행렬을 보기 위해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이미 장례식 시작 2시간 전부터 참관 구역이 가득 찼다. 조문객 상당수는 전날 밤에 미리 런던에 도착하거나 해가 뜨기도 전에 운구행렬을 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행사는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국장 이후 약 57년 만에 해외 최정상 외빈들을 초대한 만큼 막대한 돈과 인력이 쓰였다. 영국 정부는 장례비용으로 23억파운드(약 3조6050억원)를 추산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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