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두 합의문 모두 빛이 바랠 대로 바랬다. 북한이 수시로 합의를 파기하면서다. 합의문 잉크도 채 마르기 전인 2019년 11월 김정은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의 창린도 해안포 부대를 방문해 사격연습을 직접 지휘했다. 이후 북측은 수시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사실상 군사합의를 위반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미상의 발사체"로 부르며 애써 북을 감쌌다.
그사이 접경지역 정찰능력 등 우리 안보역량은 크게 약화됐다. 2020년 9월 해수부 공무원의 표류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북한군이 피격해 시신을 불태우는 광경을 멀거니 지켜봐야 했다. 합의를 지키느라 해병대는 연평도·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를 육지로 옮겨 훈련했다. 이를 위해 안 써도 될 혈세만 100억원 가까이 허비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그간의 남북 합의에 대해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했다. 9·19 군사합의 4주년에 즈음한 기념토론회에 보낸 서면 축사를 통해서다. 하지만 합의를 어긴 건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북한 정권이었다는 점에서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 허망하게 들리는 메시지다.
2018년 '판문점 선언'은 '핵 없는 한반도'가 핵심이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건지 후속 합의는 줄줄이 파투 났다. 심지어 북한은 최근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했다. 결국 문 전 대통령이 북에게 핵 포기 의사가 있는 양 국제사회에 거짓말한 꼴이다. 그렇다면 문 정부가 북한에 핵전력 고도화를 위한 시간만 벌어준 잘못을 먼저 자성해야 할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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