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건강한 삶만큼 '건강한 죽음'이 화두가 되었다. 의학의 발달로 어떤 병이든 사망률은 줄었지만 질병이나 노화 그 자체를 막지는 못해 이제는 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오랜 기간 투병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일반적이 됐다.
그런데 병원에서의 마지막은 대체로 '웰다잉'(well-dying)과는 거리가 먼, 인간의 품위와 존엄도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렇게 된 이유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산업화된 데서 찾기도 한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생애 동안 쓰는 의료비 대부분을 마지막 1~2년 동안 쏟아붓다가 사망하고 그 후에는 화려한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산업화, 시스템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박중철 지음)에 따르면 자신이 살던 집에서 죽는 경우는 이제 드물어져 우리나라 사람 4명 중 3명이 병원에서 죽는다.
의학적으로는 의식과 기력이 떨어져 음식을 섭취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지면 자연스럽게 몸에서 탈수가 되면서 사망한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의료진은 이 상태의 환자에겐 콧줄을 넣어 인공영양제를 강제로 투여해 억지로 살려낸다.
그렇다고 죽을 상황이 되었는데 병원에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장례식장에 가려면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 이 진단서에 쓸 수 있는 사인은 병사와 외인사, 불상밖에 없다. 병원에서는 병사로밖에 기록할 수 없는데 병원은 어떻게든 사람을 살려내는 곳이라 임종 전까지 수많은 검사와 치료가 시도된다.
앞서 1997년에 보라매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증 환자를 퇴원시켰다가 의료진이 살인치사와 살인방조죄로 형사 처벌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병원마다 중증 환자의 퇴원은 쉽지 않아졌다. 당시 의료비 부담에 시달리던 부인의 요청으로 퇴원시켰다가 의료진과 부인이 처벌받은 사례였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같은 건강하지 않은 죽음에 반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2018년 104세 호주 생태학자인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 역시 "특정 나이, 특정 시점부터 병원이나 생명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날 권리가 있다"며 지난 3월 안락사를 결정한 것으로 보도됐다.
우리나라는 환자의 고통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종결시키는 안락사는 불가능하지만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 제도가 시행되며 존엄사는 허용됐다. 존엄사는 사망이 임박한 환자가 더 이상 연명치료 없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며 사망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지난 6월에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명 '조력존엄사법안'을 대표발의하며 말기 환자가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일부 호스피스 병원 임종실처럼 일반 병원에서도 임종실을 만들어 고통없이 담담하고 차분히 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병원의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은 2018년에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2020년에도 같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도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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