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2월 육군 항공사 예하 ‘여자항공교육대’ 창설
항공분야 남성만의 전유물... 기존 인식의 틀을 깨다
여자항공교육대장 이정희 대위(좌측)와 '공군' 창간호에 기고한 '공군과 여자항공병' 원문 일부. 자료=공군 제공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 항공 역사는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대한민국 창공을 당당하게 지켰던 여성 항공병들이 있었다. 100년 전인 1922년 12월 10일, 안창남이 일상을 잃어 가던 일제의 식민 통치기임에도 항공 조종사로 우리의 하늘을 힘차게 날았을 때와 1948년 9월 15일, 남·북한 정권 수립 혼란기에도 미국으로부터 인수한 L-4 연락기 10대가 태극마크를 달고 서울 상공을 가로질러 날아올랐을 때도 국민들은 품고 있던 창공에 대한 동경과 염원으로 벅차올랐다고 전한다.
그 모습에 열망과 포부로 가득 찼던 것은 남성 뿐만은 아니었다. 남성에게만 허락됐던 창공을 누구보다 간절히 원해왔던 여성들이 있었고 그들은 공군 여군 역사의 시발점이 됐다.
대한민국 최초 항공기 L-4 연락기. 1952년 착륙을 위해 활주로로 접근하는 L-4. 사진=국립공군박물관 제공
1949년 2월, 육군 항공군사령부 예하 부대로 여군 항공부대, ‘여자항공교육대’가 창설됐다. 항공분야가 남성만의 것으로 인식돼 오던 기존의 틀을 깬 권기옥 선생의 활약은 당시 여성 항공분야 진출에 당찬 가능성을 보여줬다.
식민지배 아래 2등 비행사 자격을 취득한 이정희 대위는 해방 후 항공분야에서 여성 항공인을 육성하고자 했고, 항공부대 창설 후 중위로 임관해 여자항공교육대장으로 임명받았다.
여자항공교육대 창설식 당시 여자항공병(좌측부터) 이명진, 박혜연, 정숙자. 자료=공군 제공
여자항공교육대는 여학교 5·6학년 재학생 중 15명을 제1기생으로 최종 선발했으며, 제2기생 38명을 입대시켰다. 이들은 기본군사훈련을 받은 뒤 조종, 정비, 통신, 기상 등 공군 각 기술 분야에 대한 이론 및 실습 교육을 이수하는 등 각 부대를 순회하며 광범위한 과목을 학습했다. 여자항공병들은 남성과 동일한 훈련을 받으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이정희 대위는 "우리 여자항공대는 그저 말로만 남녀동등권을 외치지 않고 실제로 능력을 발휘해 실력을 보일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1949년 2월 여자항공교육대 창설식 및 제1기생 입교식. 자료=공군 제공
1995년 4월, 국방부의 여생도 운영 인가에 따라 공군사관학교는 남자로 한정한 입학자격 제한을 삭제, 1996년 7월부로 공사 입학자격이 ‘남·여’로 확대된 개정법률이 공포됐다.
3군 사관학교 중 최초로 여생도를 받아들인 공군사관학교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1997년 대통령 부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듯 하늘을 동경했던 여성 항공선구자들의 노력과 헌신은 오늘날 결국 그 결실을 맺었다.
현재도 공군 여군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으며 훗날 공군이 우주로 나아갈 그 순간에도 이들의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96년 여생도를 최초로 모집하는 공군사관학교 49기 홍보 포스터(우측)과 개교 48년만에 최초로 입교한 49기 여생도들. 자료=공군 제공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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