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리와 서양 오케스트라의 만남, 클래식의 고향인 유럽에서 관현악기로 연주되는 한국의 소리는 유럽 관객에게 생경한 만큼 신선했을 터다. 마에스트로 정치용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가야금 산조를 오케스트라로 재해석한 K클래식 '더부산조'를 들고 스웨덴, 헝가리, 오스트리아 3개국을 돌며 4000여명이 넘는 유럽 관객과 '소통'에 나섰다. '더부산조'는 지난 2019년 미국에는 소개됐지만 유럽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국립심포니의 유럽 투어 첫 행선지인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홀 지휘자의 방에서 정치용 지휘자 (사진)를 만났다. 그에게 '더부산조'를 초연하는 의미를 묻자 "당신(스웨덴 관객)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익숙하게 생각했던 악기로부터 이국적인 소리를 맛 보라는 그런 개념"이라면서 "우리가 여기서 연주하는 의미를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소통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밝혔다.
스톡홀름 콘서트홀은 스웨덴에서도 특별한 공간이다. 지난 1926년부터 매년 12월 10일, 제 2차 세계대전 중 2년을 제외하고 노벨상 시상식을 열고 있다. 정 지휘자는 지휘자의 방 벽면을 빼곡히 채운 세계적인 지휘자의 사진을 보며 "세계적인 지휘자는 물론 요새 주목받는 지휘자까지 모두 스톡홀름 콘서트홀에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6대 예술감독으로 일했던 국립심포니와 스톡홀름 콘서트홀 무대에 올라 'K클래식'을 스웨덴 관객에게 선사했다. 국립심포니 초대 상주작곡가 김택수의 '더부산조'를 시작으로 세계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한국 출신 성악가 3명과 한국 가곡과 오페라 갈라 무대를 협연한 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정 지휘자는 "서양의 오케스트라가 우리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한 곡 정도 선보이는 것이 굉장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 "서곡 정도면 듣는 사람도 부담없을 것이고 이국적인 느낌도 받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좋다는 느낌도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더부산조'의 미국 초연 당시에도 관객이 열광했다. 서양 음악과 국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정 지휘자도 비슷한 일화를 들려줬다. 미국 작곡가가 한국에서 공부해서 작곡한 음악을 정 지휘자가 국립국악원과 무대에 올렸는데 미국 관객이 기립박수를 쏟아낸 것이다. 당시 객석은 미국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그는 "서양 오케스트라는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이 채 안됐는데 서양에서 그들의 기준으로 (우리를) 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자기들이 익숙한 음향, 늘 들어온 오케스트라 사운드에서 들어보지 못한 곡조와 리듬에서 오는 신비로움, 이국적인 느낌을 던져줘야 한다"고 말했다.
즉, 서양 고유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한국의 소리를 통해 유럽의 관객과 소통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스웨덴 관객은 '더부산조' 연주가 전개될 수록 강하게 몰입했고, 무대가 끝난 뒤 기립박수가 터졌다. 헝가리, 오스트리아 객석을 빼곡히 채운 현지 관객도 기립박수로 'K클래식'에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지휘자는 평소 한국적 정서 뿐만 아니라 현대 창작에 대해서도 줄곧 고민해 왔다. 지휘 생활을 하면서 한국적 레퍼토리 개발과 연주에 비중을 뒀고 신인 작곡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창작곡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애정을 쏟았다. 그 이유를 묻자 '도전 의식'이라고 답했다. 평소 예술의 본질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던 그다.
정 지휘자는 "제가 성향이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다"면서 "했던 것을 여러 번 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새롭게 나온 곡을 공부해서 어떤 의미인지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작업을 하는 게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년 새로운 작곡가의 창작품을 추려서 연주하는 것을 국립심포니와도 하고 있고 '아창제(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ARKO))와 한국창작음악제추진위원회)'에서 심사도 하고 있다"면서 "1년에 국악과 창작을 합쳐 80~90편이 들어올 정도로 작곡하는 사람과 창작품을 알리려는 욕구도 많아서 발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작곡가가 창작에만 전념해도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 등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정 지휘자는 K클래식의 가능성은 어떻게 전망할까. 그는 K팝(BTS), K드라마(오징어게임) 등 'K컬처'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지금, 한국의 오케스트라도 성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 오케스트라가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을 거쳐 망명한 지휘자 등을 통해 '행운의 시절'을 누리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듯 한국에 '대세'가 찾아왔다는 것이 정 지휘자 생각이다. 그는 "한국 클래식도 대중문화와 같은 역량을 가지고 있고 클래식과 오케스트라도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 지휘자는 서울대 작곡과를 거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악원 지휘과를 나왔고, 서울시교향악단 단장과 인천시향·원주시향·창원시향 등 다수 오케스트라에서 상임지휘자 및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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