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방

北, 괌타격권 IRBM 발사 '9·19 남북군사합의 유효한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05 07:30

수정 2022.10.05 09:02

美 증원전력 겨냥 등 노림수, 동맹 간 이간질 위한 장기전략
北, 10월 中당대회 뒤 도발 수위 높인 도발 대기 가능성 높아
이종섭 국방부 장관, 국정감사서 '9·19 군사합의' 효용성 검토
한국 핵무장·핵 공유 여론 강화 전망 속 미국의 지지 어려워
한국의 또 다른 옵션, 핵헷징(nuclear hedging) 대안 가능성
北 도발로 9.19 남북군사합의 무실화, 긍정적 역할 근거없어
남북군사합의, 과대평가· 과잉 기대는 北 안보전략에 악용

북한이 지난달 2022년 1월 30일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했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1일자에서 '화성-12형'의 발사 장면과 이 미사일을 이용해 상공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이 지난달 2022년 1월 30일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했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1일자에서 '화성-12형'의 발사 장면과 이 미사일을 이용해 상공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파이낸셜뉴스] 북한이 4일 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이 2017년 이후 5년 만에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졌다. 일본 동북부 지역엔 대피 경보가 발령됐다.

이날 앤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미사일이 일본 상공에 있을 때는 대개 대기권 밖에 있겠지만, 북한 미사일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받는 것은 일본 국민에게는 분명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군사용 ICBM으로 전환가능한 우주 로켓과 언제든 사용 가능한 고농축 플루토늄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는 일본의 핵역량에 당장 큰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번 북한의 도발에 외신은 전문가들을 인용, 미국이 핵추진 항공모함을 한반도 주변에 전개하는 등 군사적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북한이 핵전력 향상을 과시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북한이 쏜 IRBM의 비행거리는 4천500여㎞, 고도는 970여㎞, 최고속도 약 마하 17(음속 17배)로 탐지돼 북한이 정상 각도인 30~45도 범위에서 발사한 미사일 중 가장 먼 거리를 날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비행거리로 볼 때 최대 사거리로 발사해 유사시 후속 보급 및 지원 루트와 주일미군 기지를 포함해 미국령 태평양 괌까지 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평양에서 미국령 괌까지의 3천400여㎞의 거리로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이 발진하는 기지뿐 아니라 한반도 인근으로 접근하는 주일 미군 전력을 겨냥한 전략 도발로 평가했다.

북한이 4일 오전 7시23분께 쏜 1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은 북한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발사돼 비행거리는 4천500여㎞, 고도는 970여㎞, 최고속도 약 마하 17(음속 17배)로 탐지됐으며 세부 제원은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 분석 중이다. 자료=합동참보본부·뉴스1
북한이 4일 오전 7시23분께 쏜 1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은 북한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발사돼 비행거리는 4천500여㎞, 고도는 970여㎞, 최고속도 약 마하 17(음속 17배)로 탐지됐으며 세부 제원은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 분석 중이다. 자료=합동참보본부·뉴스1
같은 날 4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서울 용산구 청사에서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국정감사에 출석 북한의 무력도발 강도에 따라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장관은 이날 오후 국정감사에서 '9·19 남북군사합의를 전면 폐기해야 한다'는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며 "북한은 합의사항을 준수하지 않는데, 우리만 준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이 장관은 또 "북한의 도발 강도를 봐가며 '9·19 군사합의'의 효용성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손대권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美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 대한 맞춤형 억제를 공언하고, 이번 정부 들어 2018년 1월 이후 중단됐던 한국과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했다"며 "한국도 고위력 현무 탄도미사일을 공개하며 맞대응에 나섰지만,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속해서 도발을 감행하고 있어 기존 조치만으로 북한의 군사력 고도화를 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손 교수는 "10월 중엔 북한 당 창건일과 중국 20차 당대회가, 11월에는 미국의 중간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북한이 이러한 특정일을 노려 한층 수위를 높인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최근 일본 기시다 총리는 김정은과의 '전제 없는'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밝혀, 과거 납북자 문제 해결을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던 아베 전 총리보다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북한이 대북 강경 입장을 보이는 한국 정부를 배제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제스쳐를 취할 경우, 한·일, 한·미·일 관계를 이간질 할 수 있는 좋은 요건이 조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또 "이 같은 북한의 '갈리치기'를 막기 위해 한·미·일 간 긴밀한 대북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는 우려와 방향을 제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그는 "한국에선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렇지만 한·미가 북핵으로부터 느끼는 위협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핵비확산이라는 미국의 사활적 이익을 침해하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은 미국의 지지를 받긴 어렵다"고 진단하고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미국과의 핵공유를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미국이 동의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또 다른 옵션은 핵헷징(nuclear hedging)으로 구체적으로 핵분열 물질을 확보하되 이를 핵무기급으로는 농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필요한 시기에 사용할 수 있는 투발수단 및 핵교리 등도 미리 준비해놓을 수 있는 선택지"이라며 "이 역시도 핵확산을 우려하는 미국 입장에선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지만 독자적 핵개발이나 전술핵 재배치에 비해선 그 후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핵헷징이란 핵 공격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필요시 수일 혹은 수주 내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거나 혹은 상대방이 그렇게 믿게 하는 옵션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한국으로선 북한의 도발이 지속될 경우, 특히 7차 핵실험을 감행한 경우, 여러 가지 대응 조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며 현실적으로 상정 가능한 여러 옵션은 미국으로부터 더 확고한 안보공약을 끌어내는 카드가 될 수 있다"며 "그 이해득실을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6년 만에 2022년 10월 1일 '국군의 심장부' 계룡대에서 거행됐다. 북한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녀 핵 사용 시 응징·대응의 역할을 맡을 '괴물 미사일'의 모습이 영상으로 처음 공개됐다. 사진=국방부 영상 캡처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6년 만에 2022년 10월 1일 '국군의 심장부' 계룡대에서 거행됐다. 북한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녀 핵 사용 시 응징·대응의 역할을 맡을 '괴물 미사일'의 모습이 영상으로 처음 공개됐다. 사진=국방부 영상 캡처
9.19 군사합의의 실효성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손 교수는 "9.19 군사합의는 남북 간에 체결한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군사합의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컸다"며 "그렇지만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와 도발 지속으로 9.19 군사합의는 점차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안정을 저해하는 불량국가로 유엔 안보리 제재에 의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제한받고 있지만, 북한 입장에선 자신들의 군사적 도발에 대응한 한국의 한미공동군사훈련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도발 수위를 높여 왔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9.19 남북군사합의는 애초 기대했던 남북한 군사적 긴장 완화, 신뢰구축, 평화체제 구축 환경촉진 등에 전혀 효과가 없었다"며 "아울러 남북한 간 '우발적 군사충돌방지'에 군사합의가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어떠한 근거도 확인할 수 없다"고 짚었다.

이는 북한은 김정은을 정점으로 '우발적 도발'이 애초에 통제되는 집단으로 항상 '의도된 도발'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비춰 봐도 그 실효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간의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 때 채택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다.

여기엔 지상·해상·공중에 각각 완충구역을 설정해 남북한 간의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각종 조치를 강구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2020년 10월 10일 북한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2형.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열병식에는 IRBM(중장거리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도 등장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지난 2020년 10월 10일 북한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2형.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열병식에는 IRBM(중장거리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도 등장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정 연구위원은 "오히려 북핵 문제에 진전없는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낙관적 기대는 허상일 뿐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이처럼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과대평가와 과잉 기대는 오히려 향후 북한의 안보전략에 악용될 여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양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 연구위원은 "정치적 차원에서도 남북한 각자가 상호 합의에 대해 상이한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남북합의를 항상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북한의 의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레이프 에릭 이슬리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외교가 죽은 것은 아니지만 회담도 재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체제를 언급하며 "북한이 군비 경쟁에서 한국을 앞지르고 미국과 동맹국의 관계를 틀어놓기 위한 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전술핵 탄두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RBM) 같은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이미 지난 2017년 9월 16일 관영선전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 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이날 매체는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훈련을 지켜보고 "무제한한 제재봉쇄 속에서도 국가핵무력 완성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는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며 "이제는 그 종착점에 거의 다다른 것만큼 전 국가적인 모든 힘을 다하여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우리 공군의 F-15K가 4일 오후 北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정밀폭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제공
우리 공군의 F-15K가 4일 오후 北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정밀폭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제공

北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우리 공군의 F-15K 4대, 미 공군의 F-16 전투기 4대가 연합 공격편대군을 이뤄 정밀폭격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제공
北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우리 공군의 F-15K 4대, 미 공군의 F-16 전투기 4대가 연합 공격편대군을 이뤄 정밀폭격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제공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