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소방차 막는 차 뚫고 가라고?"… 법 있어도 민원 무서워 주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2 05:00

수정 2022.10.12 18:04

불법주차 강제처분 4년간 단 1건
화재현장 도착 전 신고내용만으로 긴급상황 판단 어려워 소극 대응
오인신고도 많아 차량 파손 부담
지난 4월 13일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열린 소방활동 방해 불법 주정차 차량 강제처분 훈련에서 강동소방서 소방대원들이 불법 주차된 차량을 소방차로 파손하며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월 13일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열린 소방활동 방해 불법 주정차 차량 강제처분 훈련에서 강동소방서 소방대원들이 불법 주차된 차량을 소방차로 파손하며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소방의 긴급 출동 시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강제처분'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최근까지 이행된 사례는 단 한 건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 소방관들은 민원 우려와 잇따른 오인 신고 때문에 강제처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12일 소방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안전신문고' 앱을 통해 접수된 소방 시설 불법 주정차 관련 민원 건수는 전국적으로 2만8000여건에 달한다.

서울 지역만 보게 되면 연간 400~600건 정도의 소방 시설 등에 불법 주정차 차량이 적발되고 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소방 시설 등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 적발 건수는 △2019년 605건 △2020년 433건 △2021년 528건이다.


소방 관련 불법 주정차는 대규모 화재 사고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실제 지난 2017년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의 경우 불법 주차 차량으로 소방차의 현장 진입이 지연돼 사고가 커진 바 있다.

■서울 소방시설 불법 주정차 차량 연 400건 이상 적발

이에 정부는 지난 2018년 6월 긴급 출동 중인 소방차가 불법 주정차 차량을 강제로 밀고 나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한 '소방기본법 및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처분 과정에서 차량이 파손되더라도 국가가 보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문제는 법은 있지만 현실에서는 시행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 시행 이후인 지난 2018년부터 올 8월까지 소방차 출동을 방해한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강제처분을 진행한 사례는 지난해 4월 11일 서울 강동소방서에서 실행된 단 1건에 그쳤다.

당시 소방은 주택에서 검은 연기와 타는 냄새가 난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에 나섰지만 좁은 골목길 내 불법 주차된 승용차 1대가 접근을 방해했다. 소방차는 불법 주차된 차량 옆면을 긁는 방식으로 강제 돌파했고 주민을 구출할 수 있었다.

관련해 소방관들은 강제처분 이후 민원 제기에 대한 우려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 119 오인·허위 신고도 빗발치는 탓에 강제처분을 진행한 뒤 출동한 현장이 잘못된 신고인 것으로 밝혀질 경우 처분된 차량 관련 책임 소지가 불분명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원 제기·오인신고 우려

소방 관계자는 "민원인에게 시달리는 일이 허다하다 보니 강제처분 손실 보상 조항 등이 개정되더라도 (강제처분 실행까지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 불리하지 않다면 민원인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심리도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구급대원 A씨도 "하루에도 수십건 오인 신고가 접수된다"며 "불이 실제로 났는지 확인도 안되는 상황에서 길을 막고 있는 불법 주정차 차량을 강제처분하는 것은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원인이 민원 서류를 제출하는 것은 한 장이면 되지만 (해당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소방관은 수십 장의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며 "번거로움 때문에 강제처분을 망설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소방관들이 강제처분을 원활히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부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관들이 민원에 대한 부담감 없이 강제 처분을 실행할 수 있도록 소방 활동 관련 법률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강제처분을 통해 신속히 화재진압을 했다면 해당 공무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