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지난해 9월18일 새벽 제주시의 한 마트 앞.
회색 승합차를 몰고 나타난 중국인 불법 체류자 A씨(42)는 이 곳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인 불법 체류자 B씨(35)를 만나 B씨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중국인 불법체류자 40대 여성 C씨를 붙잡는 걸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지인을 통해 C씨의 불법 체류 사실을 안 A씨는 이 때 이미 C씨가 마트 인근 주거지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것까지 파악해 둔 상태였다. B씨는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A씨는 다시 승합차를 몰고 B씨와 함께 C씨의 주거지 주변으로 가 C씨가 나오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승합차로 C씨의 앞을 가로막고, B씨는 걸어서 C씨의 뒤를 밟기로 각자 역할까지 나눴다.
오전 6시40분쯤 날이 밝고 C씨가 마침내 집 밖을 나서자 A씨와 B씨는 사전에 모의한 대로 C씨를 강제로 승합차에 밀어 넣었다. 당황하며 저항하는 C씨에게 A씨는 태연하게 "법무부에서 체포하러 왔다"며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공무원 행세를 할 뿐이었다.
A씨가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승합차를 몰 동안 B씨는 뒷좌석에서 주먹으로 C씨의 머리를 내려치는 등 C씨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이후 A씨와 B씨는 C씨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차 안에 있던 줄로 C씨를 포박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C씨를 완전히 제압하는 데 성공한 A씨는 C씨의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일이 생각처럼 안 되자 A씨는 이 기회에 C씨의 집에 있는 금품을 훔쳐 달아나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결국 두 사람은 C씨를 협박해 C씨의 주거지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아냈고, A씨가 승합차 안에서 C씨를 감시하는 동안 B씨는 C씨의 주거지로 가 수납장에서 현금 225만원을 챙겨 나왔다.
두 사람은 이어 C씨가 경찰에 신고할 수 없도록 단단히 겁도 줬다. 휴대전화로 A씨가 C씨를 유사강간·강제추행하는 장면을 남긴 뒤 피해사실을 알리거나 6개월 간 매달 50만원을 보내지 않으면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식이었다.
C씨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에 의해 납치·감금된 지 2시간 만에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C씨는 자신의 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다 용기를 내 12일 만인 같은 달 30일 경찰에 피해신고를 넣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사흘 만인 그 해 10월3일 제주시에서 A씨를, 서귀포시에서 B씨를 잇따라 긴급체포했다. A씨를 검거할 때는 A씨의 도주로 도심에서 약 400m의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구속된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A씨와 B씨는 황당하게도 내내 서로 '네 탓'을 했다. A씨는 "B가 자발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B씨는 "A의 부탁에 마지못해 범행에 가담한 것일 뿐 A가 성행위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맞섰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는 "극히 흉악한 범행"이라며 지난 4월7일 A씨에게 징역 12년, B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10년 간의 신상정보 공개·고지, 5년 간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을 명했다.
이후 A씨와 B씨, 검찰이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지만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재판장 이경훈 부장판사)는 "원심의 형량이 너무 가볍거나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며 모두 기각했다.
A씨는 상고까지 했지만 대법원도 지난 9월 29일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A씨의 형량은 징역 12년, B씨의 형량은 징역 10년으로 최종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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