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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 "26년...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9 17:29

수정 2022.10.19 22:56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에 이어 '수프와 이데올로기' 20일 개봉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엣나인필름 제공)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엣나인필름 제공)


[파이낸셜뉴스]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없잖아요. 차마 인연도 못 끊고. 오로지 그들을 이해하고 (가족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 싶었죠. 그러려면 도망치지 말고 마주봐야겠다, 왜 남한 출신의 부모는 북한을 조국이라고 생각하며, 세 아들까지 북한에 보냈나, 가족 3부작을 예정한건 아닌데 2005년 ‘디어 평양’ 발표 후 ‘수프와 이데올로기’까지 26년이나 걸렸네요.”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5), '굿바이, 평양'(2009)에 이어 ‘수프와 이데올로기’(2022)까지 가족 다큐멘터리 3부작을 완성한 재일교포 2세 양영희 감독(58)의 말이다. '디어 평양'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재일교포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오는 20일 개봉하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제주 4·3 생존자인 자신의 어머니와 일본인 남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우리가 오래도록 곱씹어야 할 생각거리를 제공한다”고 추천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그어진 선은 가늘고 얇아진다”고 평했다.

■ 10년씩 찍은 내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

1971년 당시 7살이던 양 감독은 일본 니가타항에서 세 오빠를 태운 북송선을 배웅해야했다. 막내였던 그는 당시 오빠들과 헤어진 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왜 갔을까, 얼마나 먼 곳에 갔길래 안돌아올까, 주변 어른들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너도 기쁘지, 라고 말해서 오빠들이 가는 게 싫다, 섭섭하다는 말도 못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과 합작하여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명 넘는 재일조선인을 북한으로 보냈다. 이는 스위스 제네바의 국립적십자에 있는 공개 해제된 비밀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양 감독은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을 내쫓고 싶어 했다"며 "당시 일본 보수 언론은 특집기사 등을 통해 북한을 좋은 국가로 포장했다”고 짚었다. 여기에 제주4.3 생존자로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남한을 두려워했고 남한의 간첩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당한 이야기까지 보태지면서 한때 재일교포 70% 이상이 조총련을 지지했다.

결과적으로 ‘북송 프로젝트’는 양 감독의 가족에게 평생의 족쇄가 됐다. 자식을 볼모로 잡힌 부모는 조총련 활동에 더 매진했고, 막내딸 역시 조선인학교에서 모범적 삶을 강요받았다.

양 감독은 “학교 교육이 엄청 스트레스였다”며 “당시 영화관은 내 탈출구였다”고 회상했다. 북한 교육과 일본 문화 사이를 오가던 양 감독은 납득할수 없었던 부모의 선택과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갈등으로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악화됐다. 20대 시절의 이야기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엣나인필름 제공)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엣나인필름 제공)


그러다가 30대에 카메라를 들었다. 양 감독은 “다큐를 찍기 위해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3년간 피해다녔는데,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 위해 친하게 굴 수 밖에 없었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삶이 가슴으로 다가왔고, 미움은 그리움으로, 갈등은 사랑으로 변했다. '디어 평양'은 10년에 걸쳐 찍은 첫 가족 다큐였다.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수프와 이데올로기’ 역시 마찬가지다.

양 감독은 "2010년부터 10년간 찍었다”며 “2016년 (프리랜서 기자인) 남편의 등장이 나와 엄마 사이에 윤활유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어머니는 '너무 잔인하다' '잊어 버렸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 제주4.3의 기억을 꺼내기 힘겨워했고, 빌린 돈과 딸의 수입까지 털어 북한의 자식들에게 생필품을 보내는 문제로 양 감독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제주는 일본의 오사카 등과 동일 생활권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로 일본에 이주한 재일조선인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한국행 배에 올랐다. 일본에서 태어난 어머니 역시 전쟁의 폭격을 피해 부모의 고향인 제주에 안착했다.

하지만 18살에 제주4.3을 생생히 목도하고 어린 동생을 들쳐업고 오사카행 밀항선을 탔다. 어머니가 평생 숨겨왔던 제주4.3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부터다.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부부였다. 평생의 반쪽을 잃은 어머니는 2010년부터 건강이 나빠졌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제주4.3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삼촌이 개머리판으로 뒷통수를 맞아 눈알이 튀어나온 채 돌아가신 이야기다. 죽은 자식의 시체를 끌고와 다시 창으로 찌르는 모습올 본 삼촌이 분노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18년, 어머니는 무려 70년 만에 딸, 사위와 함께 제주로 향한다. 관광지로 변모한 제주도의 달라진 풍광에 어리둥절하는 어머니는, 그렇게 제주 4.3 7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다.

■ "제주4.3의 기억, 후대에 남겨야한다는 의무감 있으셨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한 가족의 사적인 대화에서 시작하나 이야기는 아픔의 한국 근현대사로 확장된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제주4.3과 남북한 이념 대립이 한 가족의 삶에 얼마나 크고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절절히 알 수 있다. 더불어 어머니가 끓이는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은 희망의 온기를 전하며 갈등의 역사를 끌어안는다.

이번 다큐멘터리에도 나오지만, 생전의 양 감독 부모는 말했다. 결혼 상대로 미국인과 일본인 남자는 절대 안 된다고. 하지만 50대에 접어든 딸이 연하의 30대 일본인 남자친구를 데려오자, 홀로 남은 어머니는 얼굴이 환해진다. 큰 솥을 꺼내 닭과 마늘을 잔뜩 넣고 삼계탕을 끓인다. "내 딸에게 잘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나중에는 사위가 장모의 레시피대로 삼계탕을 끓인다.

양영희 감독과 그의 남편인 아라이 가오루 프로듀서(엣나인필름 제공)
양영희 감독과 그의 남편인 아라이 가오루 프로듀서(엣나인필름 제공)


영화를 보고 삼계탕을 끓여먹었다고 하자 양 감독은 “일본에서도 그런 관객들의 반응이 많다”고 했다. 제주4.3도 관객들 사이에서 화두라고 부연했다.

“4.3에 대해 처음 들어 놀랐다는 사람부터 그 옛날 부모가 숨죽이며 지나가듯 했던 이야기가 4.3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생전에 아버지께 4.3에 대해 물었지만 절대 입밖에 꺼내지말라고 했다는 한 남자 관객은 자신과 달리 제주4.3을 겪은 누나에게 이 영화를 보여줬더니 누나가 그제서야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겠다며, 당시의 일을 털어놨다고 했다.”

그러니까, 재일교포에게 제주4.3은 공포 그 자체였던 것이다. “사실 어머니가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제주4.3의 기억을 후대에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으셨다.”

2020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지난 1월 돌아가셨다. 하지만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개봉을 앞두고 엄마의 얼굴이 들어간 포스터를 오가며 보기 때문이다. 완성된 영화를 보셨을까? 기억과 함께 시력을 잃어가던 중이라 완성된 영화는 못보고 조영욱 음악감독이 만든 음악만 들려줬단다.

"엄마의 유골은 현재 도쿄에 있다. 아버지와 함께 묻히고 싶다고 했으니 언젠가는 지인을 통해 오빠들이 있는 북한에 보낼 생각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북한 입국을 금지당한 양 감독은 성묘를 하지 못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엣나인필름 제공)
수프와 이데올로기(엣나인필름 제공)


장장 26년에 걸쳐 가족 3부작을 완성한 기분은 어떨까? 양 감독은 "새로운 시작점, 출발점에 선 기분이다. 내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일이 끝났다는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젠 다큐가 아니라 '가족의 나라'(2013)와 같은 극영화를 만들고 싶단다.

"부모에게 완전히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그런 인생의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사이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은 행운이었지만, 그들이 (북한을) 너무 믿고 선택한 것은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사상이나 종교 등 뭔가를 절대적으로 믿는 게 두렵다.”

태어나 자란 일본 오사카도, 오빠 가족이 사는 평양도 좀처럼 정이 안 간다는 양 감독. 오히려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제주도에 일종의 '향수'가 생겼다고 했다.
“4·3이라는 몹시 아픈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제주를 더 가고 싶어졌다. 누구에게도 못했던 아픈 얘기를 하면 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처럼.”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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