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 자산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불과 8곳만 정관에 경영권 방어 조항을 명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입한 방어수단도 이사 해임 규정을 상법 특별결의 요건보다 조금 더 강화하는 수준이거나 시차임기제(이사회 구성원의 임기 분산) 등 소극적 방어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사모펀드의 경영권 위협 사례를 고려할 때 글로벌 스탠다드에 준하는 방어수단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일 2021년 자산 상위 100대 기업의 정관을 분석한 결과 8곳에서만 정관에 경영권 방어 조항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의 경우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기존 이사를 해임하거나 정관 변경, 영업 양도 등이 이뤄지는데, 기업들은 이에 대비해 정관에 결의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자산 상위 100대 기업 중 7개사는 정관에 이사 해임 결의를 ‘출석 주주 의결권의 100분의 70 이상’으로 하거나 ‘발행주식 총수의 2분의 1 이상’ 혹은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2를 초과’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상법에서 정한 특별결의 요건인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조금 넘기는 수준으로 정하고 있다.
이사진의 임기가 일시에 만료되는 것을 막는 방어 수단인 시차임기제를 명시적으로 채택한 곳도 1곳에 그쳤다. 통상 이사 임기가 3년인데, 이사 총원의 3분의 1씩 임기가 만료되도록 구성하면 경영권 공격세력이 주식 과반수를 매수해도 이사진 전체 교체가 어려워진다. 상장회사 이사진이 일시에 교체되는 경우가 드문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실질적으로 시차임기제를 활용하고 있지만, 경영권 방어수단의 실효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 기업들이 정관에 넣을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들은 △이사 해임 가중 요건 △이사 시차 임기제 △인수·합병 승인 안건의 의결정족수 가중 규정 △황금낙하산(경영진에 거액의 퇴직금 지급 명시) 정도다.
전경련은 이들 수단들은 단지 주주총회에서 안건의 가결을 어렵게 하거나 임원진들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것을 막는 정도여서 해외 경쟁기업들이 △차등의결권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황금주(주식 보유수와 관계없이 적대적 M&A 거부 가능) 등 적극적 방어수단을 활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방어수단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도 주총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방어수단을 새로 채택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최근 한진칼이나 교보생명 사례처럼 지배구조에 일시적 균열이 발생했을 때, 사모펀드들이 이를 틈타 기업 지배권을 위협하고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전경련 정관 분석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수단 부족이 확인된 만큼 글로벌 스탠다드에 준하는 방어수단의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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