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정치적 문제를 사법부로 가져가는 행태도 옳지 않다. 대법원은 이 점도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공방의 대상으로 된 좌와 우의 이념문제 등은 국가의 운명과 이에 따른 국민 개개인의 존재양식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쟁점이고 이 논쟁에는 필연적으로 평가적인 요소가 수반되는 특성이 있으므로, 정치적 이념에 관한 논쟁이나 토론에 법원이 직접 개입하여 사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에서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본질상 정치적 공방에 관한 문제 아닌가. 경사노위 위원장에 대한 질문으로는 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기왕 시작했다면 치열한 논쟁을 통해 잘못된 인식에 대한 승복을 받아내든지, 아니면 적어도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했어야 한다. 윽박지르고 고함치다가 고발부터 하고 보는 것이 국회의 권위를 세우는 일은 아니다. 판결문에서 보듯, 사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할 가능성이 높아 실익도 없을 것으로 본다.
대법원 판결문은 마치 이번 사건을 염두에 둔 듯 핵심을 찌르고 있다. "어떤 표현이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것인 경우…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하게 문제 제기가 허용되어야 하고 공개토론을 받아야 한다. 정확한 논증이나 공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 하여 그에 대한 의혹의 제기가 공적 존재의 명예보호라는 이름으로 봉쇄되어서는 안되고, 찬반토론을 통한 경쟁 과정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이다." 뺄 것도 보탤 것도 없이 그대로 '김일성주의자' 공방에 대한 답안지가 아닌가. 형사처벌로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민주적 대응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주적 공방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모두 판결문을 정독할 것을 권한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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