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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고생하셨습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25 18:24

수정 2022.10.25 18:24

[fn광장] 고생하셨습니다
음악회가 끝나면 많은 지인분들이 무대 뒤로 오셔서 인사하실 때 "수고하셨습니다" 혹은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하신다. 내 생각엔 연주가 참 좋았는데, 혹시 그분들께는 연주가 성에 안 찼나 하는 의아심도 들곤 하지만, 아마도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을 잘 안하는 우리 문화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미국에서 오랜 기간 연주자(음대 교수)로 활동해 왔는데, 미국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어휘들을 남발하는지 연주 후에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그들의 미사여구는 어려서부터 말하기를 좋아하고 칭찬과 소통을 중시하는 문화라서 그런가 보다.

Wonderful! Amazing! Tremendous! Fabulous! Awesome! 등등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들만의 마음에서 뿜어내는 표현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만들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잘 표현하는 그들의 문화가 부럽기까지 하다.


오래전 한국 대학생 합창단과 일본 도쿄에서 연주 후 일본 대학생들과 음악회 후에 리셉션 자리에서 서로 음악회에서 느낀 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 학생들은 연주에서 본인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심각할 정도로 진지하게 잘 정리해서 표현했지만, 우리 한국 학생들은 웃음과 멋쩍은 농담 섞인 표현으로 얼버무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본인들이 연주하고 그 연주에 대하여 얘기하기가 서먹했을 법도 했겠지만….

거슬러 올라가서 필자가 어렸을 때의 교육환경을 생각하면, 한 교실에 70명씩 들어가는 콩나물시루와 같은 교실에서는 항상 조용히 해야 되고, 늘 선생님들도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던, 다시 말하면 지식전달의 교육뿐이었다. 혹 대답을 좀 하려 하면 그 학생은 버릇없고, 대답을 잘 안하면 과묵하다고 칭찬받던 그런 교육에서 자랐다. 반면 미국 교육에서의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본인들의 관심사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너나 할 것 없이 참여하곤 하는 분위기이다. 미국 학생들은 토론에 익숙하며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교육에 어려서부터 길들어 있다. 아마도 대학입학 시에 성적보다는 입학 에세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이런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내면의 느낌을 소리를 통하여 표현하는 예술인데, 우리는 종종 소리 만드는 기술에 집착하다가 내면의 느낌을 잊어버리곤 한다. 외형적인 것(껍데기)을 중시하는 우리의 문화처럼 음악도 껍데기뿐인 소리만으로는 관객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미국 줄리아드음악학교 바이올린 교수가 한국 학생들을 비하하면서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 학생들은 노래를 안 한다.
" 제 나름대로 해석하건대, 소리만 생각하고 연주하는 껍데기 음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음악가들이 한국을 빛내고 또한 세계 유수의 콩쿠르도 휩쓸고 있으며, 우리 교육의 질도 높아지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마음에 있는 느낌을 정리하여 표현하는 훈련도 우리 젊은 예술가들이, 아니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될 몫인 것 같다.
부부간에, 형제와 친구들 간에, 또 직장에서도 우리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서로 소통하는 문화를 통해 더 나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약력 △64세 △연세대 음대 성악과 학사 △클리블랜드음악원 성악연주 석사 △클리블랜드주립대 합창지휘 석사 △미시간주립대 합창지휘 박사 △로버트쇼합창단 유급단원 △오번대 교수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 △위스콘신대 종신교수, 명예교수(현) △서울시 합창단 단장·상임지휘자(현)

박종원 서울시합창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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