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반쪽 시정연설
내년 예산안 처리 파행안돼
내년 예산안 처리 파행안돼
예산은 한 해 살림살이 계획이다. 내년 예산은 윤석열 정부가 꾸리는 첫 예산으로 향후 정책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국내외 경제가 매우 어려운 마당에 정부가 갈 길을 잘못 택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긴축재정을 추구하면서도 국민복지를 향상시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정부의 고민이 윤 대통령의 연설에서 읽힌다.
대내외 악재가 산적한 시기라 어느 때보다 예산 편성과 운용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지원, 반도체 등 국가 주요 산업 투자, 국방력 강화 등 큰 예산이 필요한 곳이 한두 분야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지난 정권에서 방만할 대로 방만해진 재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예산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낭비적 요소를 최대한 걷어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약자'라는 단어를 7번, '취약계층'은 2번 언급했다.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취약계층이다. 약자 복지라는 용어에서 제시했듯이 새해 예산의 첫 번째 방점을 사회적 약자 지원에 두겠다는 정부의 뜻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세계 전체가 불황에 빠져 있지만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면 불황이 끝난 후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원자력, 인공지능(AI) 등 핵심 첨단기술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도 이날 연설에서 강조됐다.
연설의 말미에서 국회의 초당적 협력을 몇 번이나 요청한 것은 현재의 정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에 대해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시정연설 보이콧을 감행한 민주당은 '참 나쁜 대통령' '반협치' '공안정국' 등의 험한 표현까지 쓰며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검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측근들을 수사하고, 민주당사 내 민주연구원을 압수수색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내년 예산안 국회 통과가 첫발부터 진흙밭에 빠진 형국이다. 나라살림 계획을 담은 예산을 심도 있게 심사하고 보완하는 것은 국회의 중요한 책무다. 민주당이 이 대표 주변 인물들의 실정법 위반 수사를 걸고넘어지며 예산 심사를 거부하는 것은 국민을 대표하는 공당을 망각한 처사다.
지금부터 예산안을 살피더라도 처리시한인 12월 2일까지는 시간이 빠듯하다. 여야가 입만 열면 그토록 강조하는 민생을 더 이상 볼모로 잡지 말고 속히 국회가 정상화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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