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환경보호 캠페인을 살펴보면 나무를 인용한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이를테면 ‘KTX로 서울에서 부산을 이동하면 소나무 12.4그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와 같은 문구다. 나무 한 그루가 가진 효과를 직관적으로 전달, 지구를 보호하는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나무를 사람들 인식 속에 떠올리게 했다. 반면에 종이는 나무를 베어 만든다는 이유로 환경파괴적이라는 부정적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종이의 주원료는 나무 섬유소 성분인 펄프로, 종이를 생산할 때 나무를 이용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종류에 따라 100% 펄프로 구성되거나, 종이자원인 폐지를 활용하는 종이도 있다.
그렇지만 더 면밀히 살펴보면 국내 제지기업들은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국제산림관리협의회)인증 펄프만을 원료로 종이를 만들고 있다. 이 인증은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원칙 10가지를 기준으로 평가해 부여된다. 원시림 무단 벌목 목재나 유전자 변형 목재가 아닌, 체계적으로 관리한 산림에서 생산된 목재를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제지기업은 환경보전을 중시하는 FSC인증 펄프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한편으론 나무숲을 가꾸는 조림사업도 추진 중이다. 제지회사에서 종이의 원료가 되는 목재펄프는 주로 별도의 조림지(Plantation)에서 7년마다 생산되는 종이 제조용 속성수로부터 얻어진다. 종이 제작을 위해 조성된 이 조림지는 대기 중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효과까지 가져온다.
종이 생산이 산림 훼손을 부추긴다는 통념에 대한 반증은 최근 조사에서도 증명됐다. 세계 종이 생산량은 2000년 3억 1천 톤(t)에서 2020년 4억 90만 톤(t)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해당 시기, 숲의 면적은 되레 커졌다. 올해 6월 미국 메릴랜드대학(MICA)과 세계자원연구소(WRI)의 공동발표에 따르면, 2000년과 2020년 두 시점을 비교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1억390만 헥타르(ha)의 땅이 새롭게 나무로 덮였다. 이 면적은 페루보다 더 넓다. 또 세계 36개국에서는 두 시점 사이 20년의 시간동안 잃어버린 것보다 더 많은 나무 면적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세계의 주요 펄프 생산지인 유럽, 아시아, 중국 등이 포함됐다.
최근 종이 사용을 줄이는 페이퍼리스(Paperless)를 친환경 활동의 일환으로 강조하는 움직임이 있다. 역설적으로 탈(脫) 플라스틱 시대에 종이는 쓸수록 친환경적이다. 플라스틱 소재의 포장, 생활용품을 대체할 유일한 소재가 종이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대체재로서 종이는 식품 및 배달 용기부터 화장품, 의약품, 가전제품 등의 포장재 역할을 한다. 펄프∙종이 소재의 빨대·옷걸이·마네킹도 등장했다. 제지기업들은 내수성, 고강도성 등을 갖춘 새로운 종이를 속속 선보이며, 종이의 대체 가능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플라스틱과 비교해 종이가 가지는 큰 강점은 지속 이용가능한 자원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플라스틱은 매장량이 유한한 화석연료인 석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세계 석유 매장량 규모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매장량은 한정적이다. 에너지 자원 대국인 러시아는 지난해 현 수준의 자원 채굴을 계속할 경우 석유가 59년 뒤면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종이는 조림사업을 통해 계속 가꾸어질 수 있는 나무로부터 탄생한다. 더욱이 사용된 후 생분해돼 자연으로 되돌아가거나 새로운 종이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무한 순환 구조를 띠는 소재로 환경파괴와는 거리가 멀다.
종이에 대해 자칫 오해하고 종이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오히려 낭비이며 환경파괴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종이=환경 파괴’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무엇보다 친환경적인 종이를 다시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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