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이태원 참사]"10만명 시민 모였는데 경찰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30 16:09

수정 2022.10.30 16:43

30일 오후 이태원 압사 사고가 일어난 이태원역 인근 상점들은 애도 표시를 하며 휴업에 들어갔다./사진=노유정 기자
30일 오후 이태원 압사 사고가 일어난 이태원역 인근 상점들은 애도 표시를 하며 휴업에 들어갔다./사진=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사태의 심각성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 현장 바로 맞은편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박모씨(62)는 압사 사건 초기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지난 29일 오후 10시 39분께 밖에 나가보니 소방차 몇대가 왔었지만 사건 장소 바로 옆에는 음악소리와 춤판이 벌어졌다"며 "비명 소리, 음악 소리가 섞여 대 참사가 일어났는지도 몰랐다"고 전했다. 박씨는 "지구촌축제 때도 차도를 통제하는데 핼러윈때는 차도 통제를 안 하고 인도로만 다니게 해서 오히려 화를 키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한 이태원 대참사 목격자들은 초기 미흡한 대처가 화를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인근 상인들은 사상자에 대한 애도 표시로 가게를 휴업하고 상황 정리에 나서면서도 다가올 싸늘한 이태원에 두려움을 떨고 있다.
인근 병원과 주민센터에서는 유족들과 실종자 지인들이 방문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경찰 200명, 너무 부족했다"
사고 목격자들과 인근 시민들은 경찰 인력이 부족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경찰은 불법 촬영과 마약 범죄 단속을 위해 경력 200명을 투입했다. 이날 이태원에는 10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같은날 서울 도심 6만명이 모인 보수, 진보 대규모 집회에 6500명을 동원한 것에 비해서는 태부족한 상황이었다.

사고 당시 인근에서 간신히 탈출한 차모씨(18)는 "오후 10시 10분경 사람들끼리 너무 밀리고 숨이 안쉬어지는 와중에 한 여성분이 힘 풀리면서 넘어졌다"며 "아마 최초 피해자가 아닐까 싶은데, 이후 도미노처럼 사람들이 쓰러졌다"고 말했다. 차씨는 "지난해 코로나 시국에 모인 경찰보다 훨씬 적은 숫자가 통제해 이해가 안됐다"고 덧붙였다. 박씨 또한 "경찰이 200명 정도 배치된다고 언론에 나오길래 성추행 단속 정도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서모씨(50대)도 "사고 당시에 구급차가 제때 도착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인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 아니냐"며 "코로나19 이전까지의 축제 때는 경찰들이 거리에 배치되고 차도와 인도 사이에 바리게이트도 설치해서 사람들이 차도로 못 넘어가게 했지만, 올해에는 (경찰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차로를 넘어갔고 구급차의 통행로를 막았다"고 분노했다.

이날 오후 1시30분께 이태원 사고 현장은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경찰과 구청 관계자가 현장을 정리하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도 나와 걱정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사고 현장 인근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사고가 발생한 골목의 폴리스라인 앞에는 신원불상의 시민들이 놓은 추모의 꽃이 보였다. 일부 가게는 "안타까운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며 오늘 하루 휴업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를 가게 문 앞에 붙여뒀다. 스타벅스 등 현장 인근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인을 애도하는 안내문을 가게 문 앞에 붙여놓았다.

30일 오후 2시, 이태원 참사 사고 인근인 한남동 주민센터에는 실종자를 찾는 가족과 지인들이 현장 방문을 하고 있다./사진=주원규 기자
30일 오후 2시, 이태원 참사 사고 인근인 한남동 주민센터에는 실종자를 찾는 가족과 지인들이 현장 방문을 하고 있다./사진=주원규 기자

■주민센터 실종자 찾는 발길 이어져
사고 현장 인근 주민센터와 병원에는 실종자를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실종자센터에는 친구나 지인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상 3층에는 실종자 접수공간이, 지하 1층에는 접수를 마친 사람들이 대기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1층부터 3층까지 한남동 주민센터 계단에는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실종신고를 마치고 나와 오열한 외국 국적의 남성 A씨는 한국인 친구의 부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멘 국적의 남성 B씨는 "한국에 있는 예맨 커뮤니티에서 실종 사실을 알고 신고 하러 왔다" 며 "매우 참담한 심정이다"라고 밝혔다.

오후 2시 30분께 실종 신고를 마치고 나온 여성 C씨(25)는 외국인 친구 D씨(20)를 찾고 있다. C씨는 "어제부터 전화기가 꺼져있고, 집에도 가봤지만 없다"며 "신고를 마쳤고, 친구들끼리 나눠서 각 병원들을 돌아다니며 친구를 찾을 예정" 이라고 했다.

오후 3시께 박강우씨(26)는 친구 2명을 실종 신고 했다. 친구 중 한명은 어제 이태원 압사사고 당시 핸드폰을 잃어버려 연락이 안됐고, PC방에 방문해 연락을 해왔다. 나머지 친구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박씨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무서울 틈도 없이 그냥 다 깔려버렸다"고 전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통합 사망자 가족들 중에서 경찰 통보를 못 받고 오시는 분들에게 사망자 확인을 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2시 40분께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방문했다.
조 장관은 "돌아가신분들의 명복을 빌고 부상자 분들의 빠른 쾌유를 빌고 있다"며 "보건복지부는 지자체 의협 등과 협력해 부상자분들이 조속히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겠다"고 밝혔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김동규 박지연 노유정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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