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 국가를 상대로 한 줄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핼러윈 전야인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 좁은 골목에 인파가 몰려 150명이 압사사고로 사망했다. 법조계는 지자체나 경찰이 사고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했고, 이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 입증되면 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행사 주최자가 없는데다, 같은 지역에선 전례 없는 사고여서 책임소재를 따지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3만명 몰렸는데 경찰 인력은 137명 '주의의무' 논란 될 듯
1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이용객 수는 총 13만13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상황 속 거리두기가 해제되지 않았던 지난해 10월 30일 5만9609명보다 2배 이상 많고, 코로나19 확산 전이었던 2019년 10월 26일 9만6845명보다도 3만3000명 늘어난 숫자다.
법조계에서는 시설물·안전 관리 주체인 지자체와 경찰에 안전사고를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또 그에 따른 주의의무를 다했는지가 입증된다면 민사상 배상 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민사상 책임은 형사상 책임보다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에 가벼운 과실이라도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배상법은 국가나 지자체의 위법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사고 발생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 핼러윈 기간 하루 약 1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같은 달 26일 이태원관광특구 상인연합회 관계자, 이태원역장 등과 간담회를 열어 핼러윈 기간 시민 안전과 질서 확립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도 했다. 용산구 역시 핼러윈 데이 관련 특별방역과 안전사고 예방 등의 내용으로 지난달 27일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핼러윈 기간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했고, 시민 안전과 질서 확립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 역시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사고 당일 현장에 배치된 경찰 인력은 137명, 용산구가 투입한 공무원은 5일간 150명, 하루 30명에 불과했다.
사고 발생 전부터 "골목이 너무 혼잡하다", "사람이 너무 많다"는 신고가 여럿 접수됐던 점 역시 주의의무 위반의 근거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주의의무 위반은 어느 문서 하나, 행위 하나를 따진다기 보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따지게 된다"며 "사고 발생 전부터 관련 신고를 묵살했다면 주의의무 위반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례 없었던 사고 "특별법 제정 고려해야"
반면 사고 발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매년 비슷한 기간 핼러윈 축제가 있었지만, 이번 사건과 같은 대규모 압사 사건은 전례가 없었고, 이 때문에 예상 운집 인원에 따라 어느 정도의 인력 배치가 적절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경찰 인력이 투입되는 등 조치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부족했던 것"이라며 "군중 밀집으로 가벼운 부상 정도를 입을 가능성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만, 대규모 압사 사건이 발생할 것이란 사실을 예측했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2017년 포항 지진과 관련해서 특별법에 제정됐던 것처럼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발생한 재난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해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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