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채 발행 자제 등으로 ‘유동성 공급’에 73조
당국 채안·증안펀드에 12조 투입
지주그룹내 10조원 자금 공급
당국 채안·증안펀드에 12조 투입
지주그룹내 10조원 자금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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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금융당국의 'SOS(긴급구조요청)'에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가 해결사로 나섰다. 레고랜드발(發)로 얼어붙은 채권시장의 자금 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실물 가릴 것 없이 쓸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5대 금융지주회장단은 1일 김주현 금융위원장과의 간담회를 갖고 95조원 규모의 시장안정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프로그램을 가동했음에도 시장의 불안이 가시지 않자 5대 금융지주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날 제시된 지원 대책에는 △시장 유동성 공급 확대 73조원 △채권시장안정펀드·증권시장안정펀드 12조원 △지주그룹 내 계열사 자금공급 10조원 등이 포함됐다.
우선 5대 금융지주는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은행채의 발행을 자제해 단기금융시장 안정에 나섰다. 현재처럼 신용도가 높은 은행채의 발행이 이어지면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떨어지는 일반 회사채의 수요가 낮아져 수급 불급형이 심화돼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이를 위해 은행채 사전신고 규제를 지난달 28일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은행들은 당국에 사전 신고한 발행예정금액의 20% 내에서만 발행 물량을 감액할 수 있었다. 금융당국의 조치로 은행들은 사전 신고한 발행 예정 금액대로 발행하지 않아도 제재를 면제하게 됐고 은행채 억제로 채권시장 안정화 도모를 꾀하는 금융당국의 계획에 금융지주가 이날 응답한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 유동성 공급에 가장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 이유는 레고랜드 사태로 회사채 발행이 막히며 자금시장에 돈줄이 말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부터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채권금리가 급등하자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저렴한 은행 대출을 찾아 왔다. 이에 더해 최근 '돈맥경화' 현상까지 발생하면서 회사채 발행을 통한 직접 조달을 사실상 포기하고 대출로 자금을 충당하는 기업이 더 많아졌다.
실제 이날 현재 중소기업 등을 포함한 5대 은행의 기업대출은 9조9641억원 증가한 704조8637억원을 기록하며 13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또 채권시장의 매수 세력으로 직접 나서 수급도 조절할 계획이다. 투자수요가 위축돼 시장 소화가 어려운 여전채를 비롯한 특수은행채·회사채·기업어음(CP) 및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한다.
한전 등 공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 계획도 포함된다. 앞서 정부는 ‘AAA’급의 우수한 신용등급인 한전채로 시중 자금이 쏠리자 한전 등 공공기관에 채권 발행 자제령을 내렸다. 이에 5대 금융지주가 필요한 공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머니마켓펀드(MMF) 운용 규모도 유지한다. MMF는 투자신탁회사가 고객의 돈으로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해 이익을 얻는 상품이다. 최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과 단기 채권시장의 불안이 가속화되면서 손실을 우려한 기관들은 MMF에서 자금을 환매해왔다. MMF에서 자금이 유출하면 자산운용사는 환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처분해 시장의 위기감을 심화할 수 있다. 금융지주의 이번 조치로 단기 크레디트 채권에 대한 수요 확보가 용이해질 전망이다.
제2금융권에 대한 신용공여한도(크레디트 라인)도 유지하기로 했다. 최근 2금융권이 은행들의 자금회수 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는 점에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치다.
12조 규모의 채권·증권시장 안정을 위한 펀드자금의 경우 대출이 아닌 금융지주들의 자금을 곧바로 시장에 공급하는 조치임으로 높은 효과가 기대된다. 최근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은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은 만기를 하루 앞두고 채안펀드를 통한 7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에 성공한 바 있다. 지주들은 주식시장의 안정을 위해서 조성되는 증안펀드에도 지주들은 각 1조원 규모의 돈을 투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지주그룹 내 증권사와 저축은행·캐피탈 등 자금조달이 어려울 수 있는 계열사들을 돕기 위해 10조원 규모의 자금공급에도 나선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현재 어떤 계열사가 특별히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지 만약 후에 그런 조짐이 보인다면 채권 발행 외에 지주사가 도움을 줘서 해결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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