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올해 경북도는 3월 울진·삼척 산불과 9월 태풍 힌남노로 큰 피해를 겪었다.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국민과 기업, 단체는 모금단체들에 기꺼이 성금을 기부했다.
이렇게 모인 온정의 손길은 각각 873억원(경북·강원 산불)과 516억원(호우 및 태풍)에 이른다. 이 성금의 분배를 놓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너무 큰 피해에 다시 서기가 막막한 이재민들은 더 많은 지원을 당장 원한다. 반면, 성금 지원에 시간이 필요한 사정도 존재한다.
재난마다 다른 국민성금 지원 체계
4일 모금기관 등에 따르면 울진 지역에서 집이 모두 불에 탄 주민들은 많게는 정부 재난지원금과 국민 성금을 더해 1억5000만원까지 받았다. 반면, 수해 피해를 본 서울 등 수도권, 포항에서 집이 모두 망가진 주민들은 아무리 많이 받아도 2100만원이 최대다. 약 8배 넘게 차이가 난다. 그 원인은 법적으로 산불과 수해가 다른 종류의 재난으로 구분돼 성금의 지원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산불을 비롯한 화재,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폭발 사고 등 사회재난으로 분류되는 재난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 적용을 받는다. 사회재난 성금은 행정안전부에 등록한 여러 모금단체가 모금 활동을 벌여 기부금을 각기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 일정한 기준이 없어서 같은 재난이라도 지역마다 지원 규모가 들쑥날쑥해지기 일쑤다.
국민 관심을 못 받아서 모금액이 너무나 적을 때에는 아예 지원하지 못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강원 고성 지역에 2018년과 2019년에 산불이 났다. 똑같이 집이 모두 불에 탔는데, 2018년에는 242만원, 2019년에는 5000만~7500만원 이상을 민간에서 지원했다. 많게는 30배 차이다.
올해 발생한 경북(울진)·강원(강릉·동해·삼척)산불에서 집이 모두 탄 이재민은 정부 지원금 3800만원을 빼도 국민 성금으로 최대 1억1200만원을 받았다. 2018년 고성 주민이 받은 것과 50배 가까이 많다. 같은 피해를 본 이웃을 돕는데 이렇게 큰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지원 대상과 규모에 대한 기준이 없어서다.
이런 불합리함, 성금 지원의 편중·중복·누락을 막기 위해 우리 법은 기부금품법의 특별법 성격으로 재해구호법을 두고 있다. 태풍·집중호우에 따른 수해, 지진과 같은 자연재난은 이 재해구호법 적용을 받는다. 같은 피해라도 도움을 못 받다시피 하는 경우가 생기는 사회재난과 달리, 자연재난은 같은 피해에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재해구호법이 자연재난 국민 성금(의연금)을 피해 유형별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인명피해 중 사망 또는 실종에 최대 1000만원, 부상은 장해 등급에 따라 최대 250만~500만원을 지원하도록 돼 있다. 주택피해는 전파에 500만원, 반파에 250만원, 침수 또는 소파(지진)에 100만원까지 지원할 수 있다.
의연금 지급 상한액 현실화 주장, 현실성 있나?
현실적으로 100만원으로는 도배·장판도 할 수 없다. 의연금 지급 상한액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재민 입장에서는 의연금이 적을 수 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8월 집중호우와 9월 태풍으로 침수된 가구만 4만 가구를 넘는다. 이들에게 의연금 상한액인 100만원씩 지급해도 400억원 넘게 모여야 한다. 올해처럼 국민 관심도가 큰 해에는 모금과 의연금 지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금 규모는 해마다, 재난마다 천차만별이다. 관련 자료를 종합해보면 2010~2021년 의연금 지급액보다 모금액이 적었던 해가 6번이나 있었다. 재해구호법이 특정 재난에 모인 국민 성금을 다음에 일어날 재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둔 덕분에, 모금이 저조했던 해에도 400억원 넘는 의연금이 이재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국민 성금은 위로금의 성격이지 보상금이나 배상금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국민 성금이 실의에 빠진 이웃을 위로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고 본다. 애초에 자연재난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는 국가는 세계 어디를 봐도 없다. 천재지변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가입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풍수해보험에 가입하면 실질적인 피해 복구가 가능하다. 정부가 예시로 소개한 경북 모 지역 80㎡ 크기 단독주택의 1년 풍수해보험료는 정부 지원분 70%를 빼면 1만6000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풍수해보험 가입률은 매우 저조하다.
나아가 이재민을 돕고 복구 활동을 벌이는 주체는 모금단체나 구호단체가 아닌 해당 기초자치단체장이다. 그리고 지방정부는 매년 거둔 보통세의 0.5% 이상을 재난구호기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여러 자연재난 때 정부의 재난지원금 외에도 이 재난구호기금으로 시민들을 도운 지자체도 있다.
그러나 순환 보직, 재해구호라는 다소 생소한 업무의 특수성 탓인지 재난 때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급식이나 물품 제공과 같은 구호 활동과 재해구호기금 사용에 소극적이며, 모금·구호단체나 자원봉사단체 등 구호지원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꾸준히 이재민 불만이 터져나오는 이유
최근 경북을 중심으로 빠른 지원을 위해 의연금을 지방정부에서 배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국민 성금을 허투루 쓸 수는 없다. 의연금은 법이 정하고 있는 절차에 따라 이재민에게 전달된다. 지자체의 피해 집계가 끝나면 정부는 재해복구계획을 확정한다. 이 재해복구계획이 확정·수립될 때 비로소 재난지원금과 의연금이 집행될 수 있다.
재난 직후에는 피해를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련된 절차다. 사실 재해복구계획에 반영된 지자체의 피해 집계도 완벽할 수는 없다. 산불로 집이 모두 탔다고 신고해 1억원 이상 받아간 곳을 조사해보니 실제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으로 확인된 사례도 허다하다. 손해사정인회를 통해 조사해보니 그때마다 피해 규모가 들쑥날쑥하다. 국민과 기업, 단체들이 이런 집에까지 국민 성금을 전달하라고 기부했을 리는 없다.
의연금을 기부자가 지정한 지역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꾸준하게 제기된다. 그러나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 동안 가장 많은 의연금을 받은 지역이 경북이다. 이 기간 전국에 배분된 의연금 약 1817억원 중 25%에 가까운 447억여원이 이 지역에 전달됐다. 모금 현실을 보면, 수도권에서 기부하는 금액이 월등히 많다.
자연재난 뿐 아니라 사회재난도 마찬가지다. 특정 지역만을 위해 성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은 오히려 지방의 주민들에게 돌아갈 의연금을 줄일 뿐이다. 특히 지자체장 본인이 해야할 일을 나서서 우리 지역만 지정기부를 받겠다며 민간 기관을 압박하는 지역이기주의는 씁쓸한 대목이다.
민간에서 모인 성금을 배분하는 일에 정부가 관여해야 한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앞서 말했듯이, 국민 성금은 재난지원금이나 재해구호기금과 성격이 다르다. 재난의 어려움에 빠진 이웃들을 도우려고 국민과 기업, 단체가 낸 성금은 세금이 아닌 민간의 순수한 기부 영역이다.
먼 과거에 이 국민 성금이 정부 입맛에 맞춰 무분별하게 쓰인 때가 있었고 배분과정에 있어 횡령도 빈번했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기부금 모금에 대해 2006년 기부금품법개정을 통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기부금을 모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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