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경제위기 불감증 일본, 한국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07 18:00

수정 2022.11.07 18:00

[곽인찬 칼럼] 경제위기 불감증 일본, 한국은?
이 책을 읽으면 어깨에 으쓱 힘이 들어간다. 일본 히토쓰바시대 노구치 유키오 명예교수가 쓴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이 바로 그 책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엔저라는 마약에 취해 개혁은 뒷전"으로 돌렸다. 그 통에 선진국 지위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다.

반면 책은 한국에 대한 찬사로 가득하다.
혐한론이 판치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책 곳곳에 "조만간 한국에 추월당한다, 20년 후 한국의 1인당 GDP는 일본의 2배? 다양한 순위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상위"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결정적으로 "G7의 아시아 대표를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교체한다는 제안이 나온다고 가정할 때, (한국이 일본을 앞선다는) 지표를 근거 자료로 제시한다면 일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라고 묻는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 한국은 일본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를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말이 맞교환이지 사실상 국제통화인 엔화를 위기 비상금으로 확보하는 효과를 노렸다. 엔은 달러에 준하는 안전자산으로 통했다. 국제 정세가 불안하면 투자자들은 엔을 사들였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경제 역시 망할 리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올 들어 '엔=안전자산' 신화에 금이 갔다. 강달러는 모든 통화에 무차별적이지만 유독 엔화가 크게 흔들렸다. 1차 원인은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고수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를 4%까지 올렸다. 한국은행은 연준 뒤를 바싹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초저금리 정책을 포기할 기색이 없다. 미·일 금리차로 인한 엔화 약세는 불가피하다.

근본적인 원인은 쪼그라드는 일본 경제에 있다. 엔화 약세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일본의 민낯이 드러났다. 노구치 교수는 "코로나에 감염되어도 입원하지 못하고 자택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PCR 검사도 진행되지 않고…백신조차 외국에서 수입한 백신에 의지하는 상황이 찾아왔다"고 개탄한다.

노구치 교수는 일본 사회를 향해 위기불감증에서 깨어날 것을 호소한다. "객관적인 자기평가와 겸허함이야말로 사태를 개선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라며 일본 정부와 정치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정부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신규 참여를 방해하는 기득권층과 싸우면서 생산성 향상을 방해하는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하는 일" 등을 해야 한다. 요컨대 "경제와 산업구조 근본을 개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구치 교수는 "(개혁에 실패하면) 일본의 재생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일본 정치는 어떤가. 노구치 교수는 "(보수든 진보든) 여야 모두 기본적인 문제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중요한 문제는 방치한 채 인기에 영합하는 돈 뿌리기 정책만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흔히 한국 경제는 일본 뒤를 밟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다행히 한국은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20년' 늪에 빠지지 않았다. 일본의 영광은 빛이 바랬다.
과거 롤모델에서 지금은 반면교사가 됐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노구치 교수의 찬사는 과분하다.
두 나라 정부와 정치권을 보면 오십보백보가 아닐까. 아차 하는 순간 우리도 일본 짝이 날지 모른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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