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모두가 산티아고를 향해 갈때 그는 왜 반대로 걸어갔을까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07 18:11

수정 2022.11.07 18:11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아무도 찾지않는 길을 걷는 여행자
이를 지켜보는 연구원 2명이 주인공
해답 대신 끝없는 질문으로 이끌어가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 보는 느낌
정진새 작가 "혼재된 현실 담았다"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국립극단 제공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국립극단 제공
모두가 산티아고를 향해 갈때 그는 왜 반대로 걸어갔을까
'악동뮤지션' 이찬혁은 한국 대표 힙합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망치는 중이야"라고 노래했다. 힙합 프로그램에서 힙합을 '디스'하는 '힙한' 상황을 연출하며 큰 반향을 불러왔다. 지난 2일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막을 여는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이런 이찬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하반기 광주광역시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온라인 여행'을 주제로 몇몇 작가에게 희곡을 청탁하며 시작됐다. 의뢰를 받은 정진새 작가(사진)는 '코로나19로 여행을 못가는 힘든 상황이지만 온라인 여행을 통해 대리만족하자'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는 대신 새로운 시도를 한다. 정 작가는 "여행을 비롯해 일상에서 누리던 이동의 자유를 뺏긴 상황에서 마냥 기분 좋은 내용으로 집필할 수는 없었다"며 "즐거운 여행 대신 '다크 투어리즘'을 주제로 정하고 배경은 '시베리아'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연극은 사실상의 2인극이다. 오호츠크 해상 기후탐사선에 근무하는 기후연구원 에이에이와 비비가 극을 이끌어간다.
둘은 기후탐사선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반대 방향인 극동 시베리아 방향으로 무한히 걷는 '그'를 관찰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의미, 자기 성찰, 간절한 바람 등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에서 출발, 역발상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도착점이 아닌 출발점으로 설정, 아무도 찾지 않는 극동 시베리아로 떠나는 여행자와, 이를 지켜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위성을 통해 관찰한 그와 동일한 상황을 설정한 게임을 만들어 즐긴다. 온라인의 게임 속 세상을 순례하는 그와, 실제로 오프라인에 있는 그가 동시에 존재한다. 정 작가는 "단순하게 (가상의) 온라인은 틀리고 (실제하는) 오프라인은 옳다라는 이분법적인 접근은 아니었다"며 "코로나19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뒤섞이고 현실과 비현실이 혼재한 상황을 연극 예술가로 증언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은 사무엘 베게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부조리극의 형식을 취한다. 부조리극은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질문 자체를 던지는 것에 중점을 맞춘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고고와 디디는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리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다.

연극에서는 에이에이와 비비 두 인물의 대화 사이에 수십번의 암전이 이뤄진다. 보통 연극의 경우 배경이 바뀌거나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해 암전을 사용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대사와 대사 사이 수시로 암전이 발생한다.
대사의 함의를 음미할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작품 몰입을 방해하는 측면도 있다.

이찬혁이 힙합 프로그램에 출연해 힙합을 디스한 것처럼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또한 전형적인 연극의 문법으로만 이해하려면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국립극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공동제작한 이 연극은 오는 27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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