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트라우마 겪는 주민·목격자 심리 상담소 운영
[파이낸셜뉴스] "제 스스로 제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살리지 못해 후회를 많이 했고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용산구청 뒷편에 있는 심리상담소 '마음쉼카페'에서 상담을 받은 송모(21)씨는 천천히 아픈 속마음을 털어놨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로 현장에 출동한 응급구조사 송씨는 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된 학생들이 다니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인근 학교에 다니고 있던 학생이었다. 또래의 친구들이 사고 순간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에 이후 응급구조사가 돼야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생명을 더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이날부터 용산구청 산하 용산구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유족 뿐 아니라 목격자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소 운영을 시작했다. 사고 현장의 참혹했던 기억과 죄책감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을 느끼는 주민과 구조자들이 찾아와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놓고 상담소를 나섰다.
"참혹했던 그날의 기억에 고통…상담이 위로됐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용산구청 뒤에 있는 한 작은 카페가 분주해졌다. 용산구청 산하 용산구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달 말 영업을 종료하기로 한 카페 '레잇먼트'의 공간을 빌려 상담소로 운영하면서다. 오는 25일까지 운영되는 마음쉼카페는 평일 낮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 토요일에는 낮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일대일 대면 상담을 지원한다. 일요일에는 휴무다. 네이버 카페 '레잇먼트'를 통해 상담 예약을 할 수 있다. 예약자가 없는 시간에는 현장 방문상담도 가능하다.
카페에 들어서니 잔잔한 음악 소리를 배경으로 칸막이로 나눈 심리상담 부스 4곳이 보였다. 이날은 운영 첫날이어서 오후 3시까지 예약자는 2명만 찾았지만 예약하지 않고 인근을 지나가던 주민의 방문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2시 상담을 예약한 송씨는 30분 일찍 카페를 찾았다. 상담자는 우선 5~10분가량 아로마테라피를 체험하고 상담을 받게 된다. 상담사와 함께 검사척도지를 작성하고 대화하면서 30분~1시간 상담이 이뤄진다. 이경미 상담사(46)는 이번 검사에 쓰이는 척도지가 일반적인 심리상담 검사척도지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상담사는 "우울, 불안, 자살 관련 문항은 일반 검사척도지와 같지만 PTSD 관련 문항이 추가돼 있다"며 "신체적 어려움을 묻는 문항도 일반 검사척도지 9개보다 많은 15개로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날 모든 문항에 '매우 심하다'라고 답했다. 송씨는 "지난달 30일 새벽 1시에 출근해서 다른 분들이 다 퇴근한 뒤인 다음날 오후 1시까지 현장을 지켰다"며 "사람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잠깐 실신할 뻔 했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직업을 그만둘지 고민까지 한 송씨는 전문적인 치료를 권유받았다. 송씨는 "자려고 하면 생각이 계속 나서 3일동안 잠을 못 잤다"며 "제 주변 지인에게 털어놓는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전문가도 계시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줘서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태원 상인·사고대응인력도 도움 필요"
조윤희 용산구 보건소 정신보건팀장(52)은 녹사평역광장 합동분향소 옆에서 임시로 심리지원 부스를 운영하면서 사고 트라우마를 겪는 이태원 상인 및 경찰 소방관 등 사고대응인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조 팀장은 "부스를 방문하는 경찰 분도 계시고 기자 분도 계셨다"며 "유족과 직접 사고를 겪은 피해자뿐 아니라 이태원 주민, 상인 분들도 도움이 필요하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겨울철이라서 야외 부스는 이제 춥고 조금 더 아늑한 공간에서 상담이 진행되면 좋을 것 같아 카페 공간을 대여했다"고 밝혔다.
특히 당초 공간 대여 및 상담 준비로 인해 오는 10일로 예정됐던 상담소 개시를 이날로 앞당겼다고 한다. 조 팀장은 "사실 이건 일시적 장소인데 그만큼 조기개입이 중요하다고 느껴 더 일찍 열게 됐다"고 전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력이 부족해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해 상담소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날 카페에는 용산구정신건강복지센터 소속 상담사 2명과 대한적십자사 소속 상담가 3명 등 총 5명이 상담을 맡고 있었다. 오후 7시에는 용산구의사회 소속 정신과 전문의 2명이 추가로 봉사하러 오기로 했지만 이들이 매일 봉사하러 오는 것은 아니다. 아로마테라피 또한 아로마테라피협회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홍인하 아로마테라피협회 이사(49)는 이날 가게 문을 닫고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홍 이사는 "참사 당시 집에서 뉴스로 사고 소식을 봤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봉사를 하러왔다"며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안정감과 편안함을 드릴 수 있어 이번 기회에 도움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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