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최성범 서울 용산소방서장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된 이유가 논란인 가운데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대응 2단계 발령을 제때 하지 않아 피해 규모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구조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해당 혐의로 처벌한 전례가 드물어 무리한 혐의 적용이라는 비판이다.
특수본은 지난 8일 최 서장의 집무실 수색에 이어 119구급차에 설치된 블랙박스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에는 압수 이유로 “소방대응 2단계 발령이 늦게 이뤄졌다”는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응 2단계가 발령되면 인근 5개 관할 소방서에 출동 요청이 가능하다.
소방당국은 지난달 29일 첫 압사 신고(오후 10시 15분) 후 1시간이 지난 오후 11시 13분쯤 인근 5, 6개 소방서에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대응 2단계’를 발동했다. 최 서장은 앞서 오후 10시 43분 관할소방서 모든 인력이 출동하는 1단계를 발령했는데, 2단계 조치까지 ‘30분’의 공백을 부적절한 초동 대응으로 판단한 것이다. 가용 소방력을 총동원하는 3단계는 오후 11시 50분쯤 내려졌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제출받은 참사 당일의 소방 내부 무전 녹취록을 보면 참사 당시 대응 2단계를 발령한 것은 발령권자인 최 서장이 아닌 서울소방재난본부였다. 최 서장은 오후 11시5분 무전기를 잡고 “용산하나가 지휘한다”며 직접 현장 통제에 나섰지만 대응 2단계를 발령하진 않았다.
현행 법령상 소방 대응 1단계 발령권자는 현장 지휘대장이며, 2단계 발령권자는 관할 소방서장이다. 오후 10시50분쯤 한 직원이 무전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하며 대응 2단계 상향을 건의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서울소방재난본부가 대응 단계를 2단계로 상향한 건 1단계 발령 이후 30분이 지난 11시13분이었다.
경찰의 강제수사 착수에 소방당국 내부도 들끓는 분위기다.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소방 대응은 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상향 여부를 결정한다”면서 “그런 맥락을 깡그리 무시하고 특수본이 ‘대응 단계별로 시차가 크니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성토했다.
소방공무원들 사이에선 최 서장 입건 소식에 거센 반발 목소리가 나왔다. 소방청 인트라넷에는 “서장한테 책임을 지워 입건하면 앞으로 구조 활동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등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많은 시민들도 현장에서 손을 떨며 브리핑했던 최 서장의 피의자 전환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한 네티즌은 “현장에서 구조에 힘쓴 분에게 표창을 줘도 모자랄 판”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경찰 안팎에서도 “현장 구조 책임자 처벌은 무리수”라는 얘기가 나온다. 우선 소방관, 해경 등 구조 업무 담당 공무원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된 전례 자체가 드물다. 2017년 12월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당시 화재 진압을 지휘한 소방서장 등을 기소의견으로 넘겼지만, 검찰은 불기소했다. 화재 진압도 벅찬 소방관들에게 인명 구조 지연에 따른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한편 특수본은 최 서장 입건 논란이 커지자 공정하게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특수본 관계자는 최 서장 입건이 현장 구조 지휘자에게 부당한 처사라는 비판여론에 대해 “증거와 법리에 따라 공정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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