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생명 구하고도.. 문책 당하는 소방관들 '조용한 분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11 05:00

수정 2022.11.11 05:00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입건에 소방 사회 박탈감
트라우마 호소하는 소방관 체계적 지원도 절실
소방의 날인 9일 오전 서울 용산소방서에서 소방대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간담회 사회를 보던 중 울먹이고 있다. /뉴스1
소방의 날인 9일 오전 서울 용산소방서에서 소방대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간담회 사회를 보던 중 울먹이고 있다. /뉴스1

[파이낸셜뉴스]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이 참사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계기로 소방 인력에 대한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확대·재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소방관들 사이에선 최근 참사 대응 부실과 진상규명을 위한 경찰수사가 소방당국으로 향하면서 오로지 생명을 구하는데만 진력했음에도 오히려 책임 추궁의 주체로 지목되는 데 대한 답답함과 억울함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소방관 한 해 3000명, PTSD 겪는다

11일 소방청의 '2021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조사'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5만3980명 중 3093명(5.7%)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후유증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는 빈도가 높아 즉각적인 관리가 필요한 인력도 2390명(4.4%)에 달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된 119구급대원 등이 극심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면서 일선 현장에선 대대적인 정신건강 관리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관들은 각종 긴급 재난 현장에 대한 잦은 출동 등으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으며 심각한 정신건강 적신호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권영준 소방노조 서울소방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의 소방의 날 60주년 기자회견에 참여해 "사력을 다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며 "서울 소방관 7000여명 중 119구급대원은 1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출동건수로 인해 근무가 들어오면 밥 먹고 차 마실 시간도 없다. 인력 확충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최근 이태원 참사 현장을 지휘한 최성범 서울 용산소방서장이 경찰에 입건되면서 소방관 사회에선 하소연을 넘어 박탈감에 의한 분노마저 들끓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은 최 서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을 119구급대원으로 소개한 한 누리꾼은 "구급대원 갈아서 조직 유지하면서 대우는 X차반"이라며 "구급대원에게만 만능을 원한다"고 분개했다.

김주형 전공노 소방본부장도 지난 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최 서장은) 사건 발생 당시 현장 대원들보다 먼저 뛰어가셨고 '이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며 "이걸 입건하면,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임무인지 정말(모르겠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브리핑을 진행하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마이크를 쉰 손을 떨고 있는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브리핑을 진행하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마이크를 쉰 손을 떨고 있는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소방관 정신건강 지원 체계 확립 절실

이태원 참사를 반면교사 삼아 현장 소방 인력에 대한 마음건강 관리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방청은 지난 8일 기준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 중 94.1%(1033명)에 대한 긴급 심리지원을 마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심리상담 인력이 부족한 탓에 소방관들에 대한 장기적 정신건강 지원은 요원한 상태다.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48개 소방서 중 심리상담사는 84명으로 평균 소방서 3개소 당 1명의 상담사가 배치돼 있지만 상담사 1인당 소방관 768명을 담당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여건으로 인해 지속적인 상담업무 관리가 거의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소방노조는 "사회는 대형화, 복잡화하고 있어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며 "정부는 이번 참사를 반면교사 삼아 사회 안전 인력에 대한 시급한 확충과 함께, 소방관의 마음을 치유할 방안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소방청은 내년도 찾아가는 상담실 전문 상담 인력을 증원하고, 마음건강 상담·검사 진료비 등 예산을 증액 편성해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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