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젊은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결혼을 한 지 3년이 되었는데, 아직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그 때문에 시어머니와 남편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하루 이틀 살아가는 것이 마치 하루살이와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 한숨이 많아지고 식탐이 생기더니 먹고 먹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고 몸도 무거워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초봄의 어느 날 밤, 부인은 남편과 저녁밥상 앞에서 심한 말다툼을 하다가 갑자기 명치가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양의 밥을 먹은 상태에서 남편의 ‘아이를 낳지 못할 바에 차라리 나가 죽어라’는 말을 듣고 심하게 체한 것이다.
부인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분하고 열불이 나서 대청마루에 나가 앉았다. 밤이 깊었음에도 자존심이 상해서 방에는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씩씩거리면서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더니 옆으로 푹하고 쓰러졌다. 부인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바로 옆에 있던 다듬잇돌을 베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대청마루에 나온 남편은 깜짝 놀랐다. 인기척을 냈음에도 부인이 꼼짝을 안 하는 것이다. 흔들어도 깨어나지 못한 것을 보면 인사불성이 된 듯 했다. 날이 쌀쌀했음에도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똑바로 눕혀서 얼굴을 보니 입과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고, 팔다리를 들었다 놓아도 힘이 없이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언뜻 지린내가 나는 것을 보니 소변도 지린 듯했다.
남편은 부랴부랴 마을에 있는 의원을 불러 진찰을 맡겼다. “의원님 제 부인이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의원은 중풍으로 쓰려졌다는 말에 진맥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청심원(淸心元)과 소합향원(蘇合香元) 2~3개씩을 계속해서 먹였다. 사실 의식이 없어서 환약을 으깨서 입안에만 넣어 준 것으로 삼킬 수 없으니 입안에 반죽 된 환약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의원이 억지로 먹이려고 해 봤으나 사례에 걸리자 더이상 먹이는 것을 포기했다.
보통 청심원은 중풍이나 심장병과 같은 심뇌혈관 질환의 급성기에 많이 처방하고, 소합향원은 중풍이 아닌 기절이나 상기, 기울 등 일체의 기병(氣病)에 많이 사용하는 처방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처방했다는 것은 제대로 진단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인사불성으로 삼킬 수가 없으니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설령 있을 법한 효과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부인의 증상은 점점 심해지는 듯했다.
남편은 수소문해서 침과 약을 잘 쓴다는 의원에게 왕진을 부탁했다. 의원이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된 것이요?”
남편은 아이가 없어서 생긴 불화와 최근 부인의 한숨과 식탐 등이 있었다는 것과 함께 어젯밤 말다툼했던 일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의원은 진찰을 마치자 “부인에게 3불치증(三不治症)이 보이니 내가 어떻게 무얼 할 수 있겠소?”
그러나 남편은 “의원님, 가망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삼불치(三不治)이란 게 대체 뭡니까?”하고 다급히 물었다.
의원은 “손발이 축 늘어진 것은 비기(脾氣)가 막히고 끊어진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불치(不治)이고, 대변이 막히고 자기도 모르게 오줌이 나오는 것은 신기(腎氣)가 막히고 끊어진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불치이며, 눈을 뜨고 있지만 물고기 눈알처럼 눈빛이 흐린 것은 간기(肝氣)가 막히고 끊어진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불치요.”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이 사람은 본래 청맹(靑盲)이어서 눈을 뜨고도 볼 수 없게 된 지 지금까지 3년째입니다. 그렇다면 2가지 증세뿐인 것이니 혹시 살아날 가망이 없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나 의원은 “세 가지 불치증 중에 두 가지만 있다 하더라고 옛날 사리에 통달한 명의들조차 감히 치료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나와 같은 의술이 미천하고 하찮은 후학에게 무엇을 기댈 바가 있겠소?”라는 답을 했다.
사실 의원은 아내의 증상이 중풍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치를 장담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아무리 가볍게 보이는 병이라도 치료를 해 봐야 하는 법이었다.
의원의 말이 끝나자 남편의 얼굴이 어둡게 변하면서 쓰러져 있는 아내의 손을 잡고 흐느꼈다.
“부인~ 아이가 없으면 어떻소. 우리 둘만이라도 잘 살면 될 것을. 내가 부인에게 너무 모질게 굴었소. 미안하구려. 부인~ 흑흑~”
명의로 소문났다는 의원에게서조차 들은 말이 희망은커녕 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니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모습을 본 의원은 “무엇을 그리 슬퍼하는 것이요. 진짜 중풍이면 객담(喀痰)이 치성해야 하거늘 부인의 기도에 가래가 차 있지 않소. 중풍(中風)에는 중혈맥(中血脈), 중부(中腑), 중장(中臟)의 차이가 있소이다. 풍(風)이 혈맥에 맞으면 구안와사가 되고, 육부에 맞으면 사지와 관절을 쓰지 못하고, 오장에 맞으면 구규(九竅)가 막히며 생명이 위태롭소.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중장(中臟)은 아닌 듯하오.”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러자 남편은 “그럼 심각한 중풍은 아니란 말씀이시오? 살릴 가망이 있다는 말씀이시오?”라고 다급히 물었다.
의원은 잠시 말없이 진맥을 하고 난 이후 말을 이어갔다.
“부인은 중풍(中風)이 아니라 기병(氣病)의 일종인 중기(中氣)요. 부인의 촌맥과 관맥이 지완(遲緩, 느리고 완만함)하면서 부(浮, 들떠 있음)한 것을 보니 이는 생사를 넘나드는 진중풍(眞中風)은 아니요. 아마도 부인은 간의 기운이 너무 약해서 비위의 기운을 견제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생각되오. 한마디로 위토(胃土)가 간목(肝木)을 두려워하지 않고 날뛰는 것으로 그래서 최근에 항상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허겁지겁 먹기만 하고 결국 살이 급하게 쪘던 것이요. 비위(脾胃)는 사지를 주관하는데, 비위의 기운이 막혀 팔다리로 기운이 소통되지 못하니 마치 중풍으로 마비된 것처럼 증상이 나타났던 것 뿐이요. 이것을 중풍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고 해서 유중풍(類中風)이라고 하오.”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부인의 입과 눈이 돌아간 것도 중풍에 의한 것이 아니오. 지금 부인의 얼굴을 보면 입이 돌아가고 동시에 눈도 깜빡임이 없고 이마에 주름도 잡을 수 없는 것을 보면 중풍에 의한 것이 아니요. 입과 눈이 동시에 마비되는 것은 구안와사(口眼喎斜)라고 하는데, 아마도 다듬잇돌을 베고 잠이 들어 풍한사(風寒邪)가 원인으로 생각되오. 중풍에 의한 얼굴 마비는 입만 돌아간다오. 입만 돌아간 와사풍(喎斜風)이 보기에는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 뇌혈맥의 중풍에 의한 증상으로 눈과 입이 함께 마비된 증상보다 심각한 것이요. 어쨌든지 부인은 처음에 증상이 생기자마자 침을 놓아서 막힌 혈맥을 통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소. 그리고 행침 이후에 약을 썼더라면 증상이 이렇게까지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외다. 안타깝구려.”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다른 의원들의 치료는 이미 깨진 시루와 같으니 지나간 일은 말씀하시지 마시고, 제가 보기엔 제 부인은 지금 생사 간에 놓였으니 그래도 알고 계신 치료방법이 있다면 장차 죽어가는 이 사람이 저승에서 한을 품게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면서 재촉했다.
의원도 더이상 구차한 설명으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치료를 시작했다. 먼저 팔에 있는 심포경의 간사혈, 대장경의 삼리혈, 곡지혈과 손등에 있는 합곡혈, 새끼 손가락 끝에 있는 심경의 소택혈, 정수리에 있는 백회혈에 삼릉침으로 사혈(瀉血)을 시켰다. 이어서 청양탕(淸陽湯)에 삼화탕(三化湯)을 합방해서 투약했다. 청양탕은 구안와사와 함께 땀이 계속 나고 소변이 잦은 데 쓰는 처방이고, 삼화탕(三化湯)은 장부의 열을 내려서 대소변을 원활하게 하는 처방이다.
의원은 “밤이 되면 반드시 대변이 잘 나오고 흐르는 땀이 멈출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다행히 치료할 수 있는 가망이 있는 것이오”라고 했다.
다음날이 되자 정말 대변이 잘 나오고 땀이 멈추더니 의식이 돌아온 듯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행동이 처방을 복용하기 전과는 전혀 달랐다.
의원은 다시 풍증에 사용하는 비전순기산(秘傳順氣散)을 처방해서 하루 2첩을 다려서 복용하고 하고. 3일 동안 자오유주 침법으로 침을 놓자 손이 비로소 움직이고 말소리도 온전해 졌다. 이틀을 쉰 후 다시 화수미제 침법으로 침을 놓은 후 기혈(氣血)을 보하는 가미대보탕(加味大補湯)을 처방해서 하루 한 첩씩을 달여서 복용하게 하였다. 그랬더니 5첩을 넘기지 않아서 비뚤어졌던 입과 눈이 바르게 돌아오고 마비되었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자리에 앉고 일어나서 걷게 되었다. 마을에는 의원이 죽어가는 중풍환자를 살리고, 열흘여 만에 걷게 했다고 소문이 대단했다.
그러나 의원은 “중풍은 진짜와 가짜가 있으니 중풍과 기병(氣病)은 구별해야 합니다. 사실 부인의 병은 진중풍(眞中風)인 아닌 중풍과 유사한 유중풍(類中風)으로 기병의 일종입니다.”라고 겸손해했다.
기병(氣病)은 정서적인 문제가 신체적인 증상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신체형 장애를 말한다. 의원은 부인을 치료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과장할 수도 있었지만, 있는 그대로의 병증을 설명하고 실력대로 치료했을 뿐이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우잠잡저> 醫案. 婦人中風. 丙申春二月, 二十一歲婦人卒倒, 不省人事, 口眼喎斜, 一醫用淸心元與蘇合丸二三箇式, 連服三日, 無效, 一醫用蓁芃升麻湯, 灌之不納. 無奈治療, 請余診視, 口眼歪喎, 四肢散着, 烝汗偏軆, 遺尿而大便不通, 所謂喎噼 竄視, 癱瘓, 瘖痱, 皆備也. 중략. 然以余愚料, 本非眞中入臟風. 應是陽明胃土之氣太過, 寡于畏, 而厥陰風木之氣, 委和所致也. 不然則上証, 那無上溢之痰喘? 중략. 因刺絡經金穴間使, 陽明經土穴三里, 大膓經土原曲池合谷, 小膓經金穴少澤, 督脈天穴百會等, 以踈血脈之滯澁, 與臟腑中沸烝之火熱, 投劑淸陽湯, 合三化湯. 小有知覺, 其聞聲應音之擧, 切非向日之瘖聾也. 於是, 更劑秘傳順氣散, 日二貼服之, 而子午流注, 逐日行針三日, 左右手始運用, 而語音完然. 乃以大接經, 小接經法, 而休兩日後, 施以火水未濟法針. 又劑加味大補湯, 日一貼用之, 以調養散失之氣血, 未過五貼, 喎斜之口眼反正, 而痱廢之兩脚, 起床步履.(의안. 부인의 중풍. 병신년-1836 봄 2월에 21세 된 아낙이 졸도하여 인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입과 눈이 돌아가서 비뚤어졌는데, 어떤 의원은 청심원과 소합환 2~3개씩을 3일 동안 계속해서 복용하게 했는데 효과가 없었고, 다른 의원은 진교승마탕을 입에 흘려 넣어주었으나 먹지 못하였다.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나에게 진료를 청하기에 살펴보았다. 입과 눈이 돌아가서 비뚤어지고 손발이 축 늘어지고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으며 자기도 모르게 오줌이 나오고 대변은 나오지 않았으니, 이른바 와벽, 찬시, 탄탄, 음비가 모두 나타났다. 중략.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본래 진짜 중장은 아닌 듯하다. 분명 양명위토의 기운이 너무 지나쳐서 두려움이 적어져 궐음풍목의 기운이 위화된 결과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 증세에 어찌 위로 차오르는 담천이 없단 말인가? 중략. 이에 낙맥과 경맥의 금혈인 간사와 양명경의 토혈인 삼리와 대장경의 토혈과 원혈인 곡지와 합곡, 소장경의 금혈인 소택과 독맥의 천혈인 백회 등을 방혈하여 혈맥의 막히고 껄끄러운 곳과 장부 속의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을 소통시킨 뒤 청양탕에 삼화탕을 합하여 투약했다. 약간 의식이 돌아와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행동이 이전의 마치 귀 멀고 말 못하는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에 다시 비전순기산을 지어서 하루에 2첩을 복용하게 하였고, 자오유주침법으로 매일 3일 동안 침을 놓았더니 좌우의 손이 비로소 움직이고 말소리가 완전해졌다. 이에 대접경과 소접경 침법을 사용하고 2일을 쉰 뒤에 화수미제 침법을 시행하였다. 다시 가미대보탕을 지어서 하루에 1첩을 써서 흩어져버린 기혈을 조섭하게 하였더니, 5첩을 넘기지 않아 비뚤어졌던 입과 눈이 바르게 돌아오고 마비되어 쓸 수 없었던 두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의종손익> 非風一症, 卽時人所謂中風症也. 此症多見卒倒, 卒倒多由昏憒, 本皆內傷積損頹敗而然, 原非外感風寒所致, 而古今相傳, 咸以中風名之, 其誤甚矣. 故余欲易去中風二字, 而擬名類風, 又欲擬名屬風. 중략. 竟以非風名之, 庶乎使人易曉, 而知其本非風症矣.(비풍증이라는 증상이 바로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중풍증이다. 이 증상은 대체로 졸도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졸도는 대부분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생기는 것으로, 근본 원인이 내상으로 몹시 상하여 그런 것이지 원래 외부의 풍한에 감촉하여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오기로는 이 증상을 모두 중풍이라고 명명했으니 그 오류가 너무 심하다. 그래서 나는 중풍 두 글자를 바꾸어서 ‘유풍’이라고 명명하려고 하며 또 ‘속풍’이라고 칭하려고 한다. 중략. 그래서 마침내 ‘비풍’이라고 명명한 것이니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여 그 병증의 근본 원인이 풍증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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