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구청장의 무책임한 처사로 박 구청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사퇴론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소환'제가 부각되고 있다. 주민소환은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선거직 공무원에게 문제가 있을 때 임기 중 주민투표를 통해 해직시킬 수 있는 제도다. 유권자 15%의 동의 서명을 받아야 청구가 가능하며,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 과반수가 찬성해야 가결된다. 투표율이 기준에 못 미치면 개표 없이 자동 부결된다.
다만 현실적으로 박 구청장에 대해서는 주민소환 적용이 불가능하다. 주민소환법 8조에 따르면 선출직 지방공직자의 임기개시일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없다. 박 구청장은 지난 7월 1일 임기를 시작해 아직 1년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시민들은 주민소환 제도가 유명무실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공직자들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주민소환 문턱이 낮아질 경우 정치적 악용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15일 파이낸셜뉴스가 만난 시민들은 주민소환이 유명무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김모씨(25)는 "(주민소환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관련해서 아는 것이 없다"며 "취지는 좋은데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적극적으로 도입해 실행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20대 대학생 장윤석씨는 "주민소환이 어떤 제도인지는 알지만 시행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다. 취지에는 동의하나 거의 유명무실하고 조건도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실제 주민소환이 국내에 도입된 지난 2007년 이후 직이 상실된 사례는 지난 2007년 하남시 주민소환 투표 사례가 유일하다. 당시 유신목·임문택 전 하남시의원은 직을 상실했다. 함께 주민소환 투표 대상이 된 김황식 당시 하남시장과 다른 시의원 1명은 투표율이 낮아 주민소환투표가 부결됐다.
때문에 이번에 주민소환의 제도적 문턱을 낮추는 등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대학생 장씨는 "최근 박희영 구청장 때문에 주민소환이 주목받고 있는데 법적으로는 임기 1년 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 이슈가 터졌는데 1년 뒤면 동력이 사라질 것이다.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시민들은 주민소환의 활성화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시민이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제도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직장인 신모씨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주민소환은) 좋은 제도라고 생각이 든다. 홍보가 안 돼 있고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아쉽다"며 "(주민소환이) 잘 활용되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른 직장인 서모씨(28)는 "선출직 공무원에게는 국민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주민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하거나 결격 사유가 있다면 당연히 주민 의사에 따라 해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30대 직장인 강모씨는 "주민소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이태원 참사)에 인식하게 됐다. 박 구청장 사례가 문제가 된 부분은 아직 취임 1년이 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시기는 조정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직 사회에서도 이태원 참사 과정에서 박 구청장의 행태에 대한 비판 여론은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를 주민소환 문턱 낮추는 시도에 대햏서는 아직 조심스런 분위기다.
물론 주민소환제는 대의 민주주의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 장치로써 작용한다. 이를 통해 지방행정을 투명하게 하고 책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주민소환이 잦을 경우 안정적인 지방행정 운영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 또 재선거로 인한 예산 낭비의 우려가 있고 정치투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정치투쟁이 심화할 경우 지역 주민들이 갈라지면서 지역이기주의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 해야 한다는 것이 공직자들의 설명이다.
채희락 충주시의원은 "시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주민소환제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고착화된 양당체제 하에서 주민소환의 활성화는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높다.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주민소환이 이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에 대한 혐오나 불신 등 (정치인이) 반성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주민소환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원활하게 이용되기 위해서 다양성 확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 타파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공무원 A씨도 "주민소환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최근 분위기에 공감이 되지만 제도 도입 당시 제한을 둔 이유도 있다"며 "분위기에 휩쓸려 주민소환 문턱이 너무 낮아질 경우 우려했던 부작용이 현실화할 수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전했다.
주민소환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일부 시민들도 공감한다.
대학생 이모씨(23)는 주민소환과 관련해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는 편이지만 현재 기준도 높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직장인 B씨도 "주민소환 기준에 대해서는 (사회가) 고민을 해봐야 한다. 그렇지만 악용될 소지를 주지 않도록 문턱을 낮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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