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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이여 힘든 시간 곧 지나가... 어쩌면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찰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21 18:09

수정 2022.11.21 18:09

그림 이어 힙합전사가 된 낭만가객
이 시대의 진정한 아티스트 최백호
타이거JK·지코 등 한참 후배들과 작업
생각조차 안해본 힙합 앨범 내년 출시
"90세까지 노래하겠다" 약속 지키려면
가르치기보단 배우면서 도전하고 싶어
목소리 늙어도 진심 전할 수 있어 행복
청춘들이여 힘든 시간 곧 지나가... 어쩌면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찰나
인터뷰 말미 "(청춘들에게) 힘든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겠지만 곧 지날 것이다. 반드시…"라는 말에 순간 뭉클했다. 돌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스무살에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후 생계를 위해 가수가 된 우리시대 아티스트 최백호의 청춘 역시 녹록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마음 갈곳을 잃어'(1977), '영일만 친구'(1979), '낭만에 대하여'(1994)로 유명한 '낭만 가객' 최백호(72·사진)는 여전히 현역 가수다. 최백호가 지난해 12월 '세상보기'에 이어 지난 10일 최백호 기획앨범 '찰나(刹那)'를 내놓았다.


2018년부터 CJ ENM의 신인 작곡가 육성 프로젝트 오펜 뮤직의 멘토로 참여하고 있는 그가 타이거JK, 지코, 헨 등 후배 가수·작곡가들과 함께 한 작업물이다. 요즘도 매일 새벽 6시 반쯤 일어나 2~3시간 노래 부르고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새로운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7월 전시회를 연 그는 내년에는 힙합 앨범을 내놓을 계획이다.

―마지막 트랙인 '책'을 제하고 후배들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불렀다. "내겐 또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것 같다"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나.

▲이번에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장르인 힙합과 EDM 팝을 시도해봤다. 정말 많은 동료 뮤지션들 덕분에 즐겁게 새로운 도전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또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계기이지 않을까 한다. 처음 데모를 듣고 '와, 요즘 젊은 작가들의 곡 수준이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느꼈다. 제게 신선한 도전이자 자극이 됐다.

―타이거JK와 협업한 '변화'를 들으면서 변화를 느꼈는데, 힙합의 매력을 꼽는다면.

▲제가 직접 랩을 한 곡은 아니지만, 힙합 아티스트와의 첫 작업이고 힙합의 매력에 살짝 빠졌다. 타이거JK의 카리스마 넘치는 랩에 저도 잘 맞추고 싶어 낯설지만 노력해본 부분이 사람들께 좋게 다가간 듯하다. 힙합은 개성이 넘치고 특유의 자유로운 점이 매력 있다. 70대도 힙합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데 감사하게도 개코, 지코 두 분이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얘기도 해줘 한 번 도전해볼까 생각 중이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5~1996)에 '낭만에 대하여'가 수록되면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곡은 저를 지탱해준 참 고마운 곡이다. 인생에 있어 진정 낭만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노래로 표현한 점이 매력일 수 있겠지만 이 곡이 비교적 오랜 기간 사랑받을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듣는 이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매력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20대에 들었던 분은 어느새 중년이 되셨을 거고, 중년에 들으신 분은 저처럼 일흔이 넘는 노인이 되셨을 텐데…정말 감사한 일이다.

―방탄소년단 뷔가 꼽은 '바다 끝'이라든지 에코브릿지와 함께 한 '부산에 가면' 등이 젊은층의 사랑을 받았다. 중장년층은 '낭만에 대하여'를 아련하게 떠올리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내 인생 최고의 곡'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저 역시 '낭만에 대하여'를 참 소중하게 생각한다. 마흔이 넘어 부른 이 노래를 통해 제가 지금까지 가수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앨범의 '책' 역시 제가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다. 듣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었는데 비슷한 감상평을 주신 분들이 많아 참 좋다.

―59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올해 전시회를 열었다. 화가 최백호와 가수 최백호는 어떻게 다르고 같은가.

▲노래를 부를 땐 조심하게 되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있다. 시간이 지나도 그 긴장은 매한가지다. 그런데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릴 땐 참 평안하고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어쩌면 가수보다 화가가 더 천직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듣는 분, 보는 분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직업이다. 찾아주는 분이 계시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최백호의 목소리와 색깔을 지금까지 잃지 않은 원동력은.

▲사실 제 팬들은 제 목소리도 나이 들었음을 느끼실 거다. 그런데 늙으면 목소리도 당연히 그 나이에 맞게 늙는다. 얼굴에 주름이 생기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마음도 편하고 좋더라. 목소리는 늙어가도 제 노래로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의 진심은 한결같다는 확신만 있다면 긴 세월 노래해도 행복하리라 믿는다.

―흰머리 때문에 나이들수록 '백호(白虎)'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신다. "90세까지 노래하겠다"는 기백과 59세에 그림에 도전한 용기, 후배들의 멘토면서 함께 작업하는 동지라는 점이 더욱 그렇다.

▲제 이름이 너무 쎄서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단 얘기까지 들었다. 참 부담스럽고 싫기도 했지만 나이 들어가며 좋다. 나름의 매력도 있고 또 오래 기억될 수도 있으니까. 90세까지 꾸준히 노래하고 싶다. 후배들을 가르칠 사람은 못된다. 그저 같이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고, 새로운 음악에 도전할 수 있게 후배들이 저를 끌어준다면 잘 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보고는 싶다.

―녹록치 않은 유년과 청년시절을 보냈고, 가수로서도 마냥 꽃길만 걸은 건 아니다. 요즘 고단한 청춘들에게 우리시대 어른으로서 한 말씀 한다면.

▲돌이켜 생각해보면 낭만은 추억이다. 젊은 사람들은 젊음 그 자체가 낭만이란 걸 모른다.
나이가 들면 '아 그때 그 찰나가 낭만이었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지금 여러분이 마주한 순간이 어쩌면 정말 오래 기억될 찰나일 수 있으니 부디 이 순간을 소중하게, 아끼며 행복하게 보내면 좋겠다.
힘든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겠지만 곧 지날 것이다. 반드시…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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