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카드 있으세요?
7월말 국내 법카 1064만장, 3분기 승인금액 53조 넘어
발급규모 10분의 1 이지만 결제금액은 4분의 1 ‘알짜’
일반인 생각과 달리 물품 결제 등 비소비성 사용 90%
소비성 업종 중 음식점이 큰 비중… 골프장 증가 추세
주요기업들 지급엔 인색하지 않지만 사후 관리는 철저
유흥업소 등 부정사용 막기위해 ‘클린카드’ 변경 대세
7월말 국내 법카 1064만장, 3분기 승인금액 53조 넘어
발급규모 10분의 1 이지만 결제금액은 4분의 1 ‘알짜’
일반인 생각과 달리 물품 결제 등 비소비성 사용 90%
소비성 업종 중 음식점이 큰 비중… 골프장 증가 추세
주요기업들 지급엔 인색하지 않지만 사후 관리는 철저
유흥업소 등 부정사용 막기위해 ‘클린카드’ 변경 대세
■코로나도 맥 못춘 '법카의 힘'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국내 법인카드 숫자는 1064만장 정도입니다. 발급 숫자로는 개인 신용카드의 9.6% 정도인데 사용금액을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3·4분기 개인카드는 승인금액이 232조3000억원, 법인카드는 53조3000억원이었습니다. 발급 규모는 10분에 1에도 못 미치지만 결제금액으로는 4분에 1에 가까울 정도로 '알짜 카드'인 셈입니다. 실제로 법인카드의 평균 승인금액은 13만6280원인데 개인카드는 이보다 훨씩 적은 3만6421원 정도입니다.
법인카드는 혹독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꿋꿋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126조7799억원이던 법인카드 사용액이 2020년 130조1909억원, 2021년에는 147조5627억원으로 증가할 정도이니 말입니다(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 다만 법인카드 결제는 물품 결제 같은 비소비성 사용이 90%에 달합니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법인카드의 사용과는 많이 다릅니다.
나머지 10%를 차지하는 소비성 업종 사용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음식점으로, 지난해에만 총 11조4355억원이 결제됐습니다. 작년 외식업 매출 총액이 101조5000억원 규모였던 것을 감안하면 법인카드 손님은 소상공인에게는 중요한 고객임이 분명합니다. 음식점 다음으로는 백화점이 2조294억원, 골프장에서 1조9160억원 사용됐습니다. 룸살롱,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에서 사용액은 2120억원으로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났습니다.
눈에 띄는 부분은 골프장에서의 법인카드 사용액입니다. 2019년 1조2892억원, 2020년 1조5195억원, 2021년 1조9160억원을 기록해 코로나19에 아랑곳 않고 급성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소비성 업종의 법인카드 사용액이 대부분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이후 감소하는 것과 대조적인 상황인 것이죠. 코로나19로 인한 해외여행 중단의 최대 수혜업종이었던 골프장의 호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업들 지급은 후해도 관리는 '깐깐'
그렇다면 기업들은 법인카드를 어떻게 사용할까요. 국내 대표기업들에 법인카드를 어떻게 운용하는지 물어보니 의외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법인카드 지급이 자유로운 기업이 많았고, 한도도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만큼 결제내역에 대한 사후관리는 철저했습니다.
법인카드 발급에 가장 후한 기업은 현대자동차로, 직급에 관계없이 업무상 필요한 경우 신청이 가능합니다. 한도는 100만~300만원이지만 예산한도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회사 업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업종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고 병원이나 학원, 피트니스 같은 곳에서는 금지됩니다.
LG화학은 기본적으로 선임 직급부터 법인카드가 지급되지만 업무 직군에 따라 사원도 발급이 허용됩니다. 한도는 300만원부터 시작하고, 회사가 업무상 허용하는 범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재계 맏형인 삼성전자는 임원에게 법인카드가 지원된다고 합니다. 임원 미만 직원들은 업무상 지출이 필요한 경우 개인카드로 결제 후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에 영수증을 입력하면 정산이 됩니다. 다만 개인카드는 음식점, 카페 같은 곳의 결제만 인정된다고 합니다. 법인카드라고 해도 과다지출은 처리가 안 된다는군요. 삼성전자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 '특별방역기간 내 오후 6시 이후 법인카드 사용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기업들에 어떻게 법인카드를 운용하는지 물었을 때 사명이 공개되면 알려줄 수 없다는 곳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들 기업의 법인카드 운용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팀이나 직급별로 한도가 다르고,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중심으로 법인카드를 발급했습니다. 유흥업소 등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것도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기업이 조심스러운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법인카드를 '판도라의 상자'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애초에 논란의 빌미를 주기 싫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대세는 클린카드
실제로 법인카드를 클린카드로 바꾸는 곳도 많습니다. 클린카드는 단란주점, 유흥주점, 룸살롱, 나이트클럽 같은 곳을 제한업종으로 지정하고 여기서 사용하면 결제가 사전에 차단됩니다. 공공기관들이 2005년부터 도입해 온 카드로, 이제는 사기업도 도입하는 곳이 늘었습니다. 결제가 사전에 막히다 보니 재미있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한 대기업 직원의 얘기입니다. 서울 여의도에서 거래처와 점심 미팅을 한 후 커피숍에서 얘기를 더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페마다 자리가 없었고 이곳저곳을 헤매다 겨우 커피를 판다는 안내가 붙어 있는 곳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결제를 하는데 느닷없이 승인거부가 뜨더랍니다. 알고 보니 손님이 없는 낮시간에는 커피를 파는 유흥주점이었던 것이죠. 당황한 사이에 거래처 쪽에서 결제를 해 위기를 넘겼지만 클린카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고 합니다.
법인카드는 지난해 2·4분기 사상 처음으로 1000만장을 넘어선 이후로도 꾸준히 발급이 늘고 있습니다. 굳이 클린카드라는 별도의 법인카드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신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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