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한마디 했다고 미운털이 박힌 삼성은 정권의 핍박을 받아 한동안 홍역을 치렀다. 공개적 작심 발언은 아니었지만 절대 과장이 아니다. 비슷한 말을 10여년 전 금융사 대표에게 들은 적이 있다. "금융기업 설립에 도장을 600개를 받아야 한다니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27년이 흐른 지금 무엇이 바뀌었을까. '낫씽'(Nothing)이다. 반도체 특별법을 넉 달째 깔아뭉개고 세상을 못 읽는 청맹과니가 된 국회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 어떻게 하면 반도체를 키워줄까 노심초사하는 다른 나라들과 대조적이다. 정치 수준은 사류가 아니라 이젠 오류, 육류로 떨어졌다. 발전은 고사하고 나락으로 치닫는 정치에 국민은 신물을 낸다.
허무맹랑한 대통령의 심야 술자리 소설을 읊어댄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 최소한의 판단력은 있었을 전직 기자다. 검은 정치에 접근하더니 근묵자흑(近墨者黑)도 정도가 심해 너무나 일찍 썩은 밑바닥에 도달해 버렸다. 더 말문이 막히는 사람은 민주당 최고위원 감투까지 쓴 장경태 의원. 캄보디아에 사람을 보냈는데, 이유가 김건희 여사가 찍은 사진에 조명을 썼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란다. '빈곤 포르노' 타령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썼을 리도 만무하지만 설령 썼다고 한들 무엇이 중한가. 김건희든 김정숙이든. 수출외교를 하러 직접 갔다 해도 성이 차지 않을 판이다.
정치가 사류를 못 면하는 것은 과도하게 부여된 권력 탓이다. '낙하산'으로 불리는 자리, 뒤로 받는 정치자금, '배지'라는 번드르르한 명예…. 특권의 달콤함은 이성과 분별력을 잃게 하는 모양이다. 걸핏하면 외치는 민생이 한낱 핑곗거리에 불과함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 권력다툼에 제발 민생을 들러리로 갖다 붙이지 말라. 듣는 국민은 속이 뒤집어진다.
관료 또한 구태를 벗으려던 노력에 성과가 없다. 국민과 기업 위에 군림하며 위세를 부려온 흑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국가 행정권이라는 거대한 권한의 남용 전력은 신관치라는 이름으로 깨어나는 휴화산처럼 스멀스멀 되살아나고 있다. 권한과 권력의 원천은 이 회장이 말한 도장, 바로 규제다. 완화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우는 아이에게 주는 젖 한 모금 정도다.
믿을 것은 기업밖에 없다. 기술개발과 판로개척에 이 순간에도 묵묵히 피땀을 흘린다. 이류라고 자평했던 삼성은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 일류의 반열에 올라섰다. 정치의 훼방만 없었다면 더 일찍 도착했을 목표다. 못 잡아먹어 안달 난 것도 아니고, 국가권력이 그들에게 안겨준 건 가혹해진 형벌이었다. 잘못한 게 분명히 있겠지만 외국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고 한다.
그래도 희망을 본다면 젊은 정치인들이다. "싸우는 내용이 사진 조명, 손짓, 이런 수준"이라며 "사이버 레커들이 펼치는 지엽말단적인 주장을 반복하면서 헛발질만 하고 있다."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의 말이다.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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