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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발자취 따라 근·현대 100년史 되짚는 계기 되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28 19:30

수정 2022.11.28 19:30

우표 역사책 ‘체부’ 펴낸 나봉주 대표
수집 우표 1만장 추려 징비 사료집 내
희귀본 수집에 9억~10억원 가량 들어
조선총독부 관보 1만7천건 뒤져 만든
'일제강점기 우체국 명단’ 가장 힘들어
"젊은 세대에 역사 알려주고 싶어 시작"
사진=서동일 기자
사진=서동일 기자
"처음에는 애국심도 사명감도 아니었다. 그저 우표 도감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자료 정리를 계기로 우리 근현대사를 깊게 들여다보다 보니 마치 독립운동하는 심정이 됐다. 마침내 결단을 내려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수집한 우표 1만여장 중 절반을 추려 우표 역사책 '체부'(박영사)를 펴낸 나봉주씨(75)는 역사학자도 문필가도 아니다. 42년째 중소기업 반도엠피에스를 경영 중인 그는 지난 7년간 '체부' 집필에 매달려 무려 1300쪽에 달하는 '한국 근·현대 우편사 징비 사료집'(부제)을 냈다.
'20년 지기' 우남일 전 숭의여고 교장은 나 대표가 아파트 몇 채 값을 들여 성취한 이 일을 두고 "우취(우표수집 연구가)의 단계를 넘어선 일"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취미에 거액을 쓴 것에 비해 그가 일하는 사장실은 소박했다. 대신 책장에 일렬로 꽂힌 무려 14권에 달하는 '체부' 가제본은 그가 인생에서 무엇을 특히 중시하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나 대표는 "네이버 인명사전에 이름도 안나오는 필부의 책이지만, 각고의 노력과 집념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책 제목이 '체부'(우편집배원)다. 언제부터 우표 수집을 했나.

▲형을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우표를 샀다. 당시 체신부 산하 체성회에 가입해 월 회비를 내면 새 우표를 집으로 보내줬는데, 체부가 대문에 들어설 때마다 가슴이 두근대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하다가 먹고 사느라 바빠서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애들 다 키우고 사업이 안정된 60대 들어 다시 우표에 대한 애착이 되살아났다. 우편 도감을 만들려고 우편 봉투 한장 한장 다루다 보니 거기서 지난 100여년 전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선 말부터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미군정기까지 우표, 봉피, 엽서, 우편 사료, 사진 자료 등을 시대순으로 분류했는데 모두 본인 소장인가.

▲그렇다. 138년 전에 발행된 한국 최초 문위우표, 1861년대 통신수단 우역과 마패, 1884년 청일전쟁 당시 체송된 엽서, 1885년 아펜젤러(미국 감리교 선교사) 실체 봉피, 명성왕후 삽화가 실린 프랑스 옛날 신문 등 지난 15년간 우표상을 통하거나 해외 경매 사이트에서 직접 낙찰받아 모은 것들로 책을 만들었다. 이베이 경매사이트는 새벽 3~4시에 마감돼 응찰 후 자고 일어나면 어떨 때는 낙찰되고 어떨 때는 안돼 놓친 물건도 많다. 낡은 우표 한장 한장이 내겐 소중하다. 한장이라도 더 모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얼마나 많은 사비를 들였나. 최고가 희귀본을 꼽는다면.

▲책에 수록된 우편사 실체 자료들은 최저 50만원에서 최고 3000만원까지 다양한데 누적 9억~10억원 가량 썼다. '일제 주요 인사 서신 검열 문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본이다. 1918년 조선총독부 체신국 감리과장이 전국 우편국에 하달한 체비문서로 이승만, 안창호 등 한국 주요 인사의 서신을 검열하라고 지시한 비밀문서다. 또 이화 보통우표와 함께 미국에서 인쇄해온 태극우표에 새로운 액면을 첨쇄해 전위첨쇄 보통우표가 함께 사용됐는데, '전위첨쇄 시리즈'는 1903년 인천 제물포에서 상하이를 거쳐 홍콩에 체송된 봉피로 1994년 스위스 경매에서 당시 670만원에 낙찰됐던 것이 여러 주인을 거쳐 2018년 취득하게 됐다. 이렇게 여러 장 우표가 붙어 있는 봉투를 만나는 건 큰 행운이다.

―우편사를 통해 1884년 우정총국과 갑신정변, 1910년 국권 피탈 등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기술하거나 인용했다. 특히 항일 독립투사 37인 유언록과 여성 독립운동가 명단 등을 별책으로 수록하며 역사의식을 드러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원고를 작성하다가 격한 감정에 가슴이 스러지고 눈시울이 적셔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내가 독립운동가가 되어가는 듯했다. 이름 없는 항일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이 일제강점기 35년을 거치면서도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 우리나라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정말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독립운동하면 3대가 가난에 시달리고 친일하면 3대가 호의호식한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씁쓸하다. 독립자금을 전달해준 외국인 선교사 역할도 커서 그 명단도 수록했다. 해당 연도에 발생한 당시 주요 우편사, 구한말·일제강점기 역사적 사건과 문화, 풍습, 인물들 기록을 접목시켜 잊히고 있는 역사를 우리 청년들에게 일깨워주는 데 중점을 뒀다.

―서문에 서애 유성룡 '징비록'을 생각하며 치욕의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심경으로 우표를 선별하고 정리했다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내 진심이다.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1~2시간 회사 업무 보고 하루종일 이 작업에 매달리며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을 상기하며 향후 미래를 위한 새로운 디딤돌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매달렸다. 일제강점기 우체국 명단은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조선총독부 관보 1만7000여건을 장장 6개월에 걸쳐 검색, 발췌해 작성했다. 모르는 한자도 더러 있어 옥편 찾아가며 작업했다. 책에 수록된 이미지는 직접 다 스캔 받았고 심지어 엑셀워드로 작성한 원고를 한글문서로 전환해야 했는데, 수많은 문장과 도안이 깨져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나 대표는 자비로 출간한 권당 12만원짜리 이 책을 전국 도서관과 우체국, 고등학교, 대학교 467곳에 무료 발송했다. "젊은이들이 특히 우리 역사에 흥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발로였다. 그는 "도합 104부가 반송돼 너무 섭섭했다"면서도 "서점에서 팔려 (소액이었지만) 인세라는 게 통장에 찍혔다"며 기뻐했다.
"촌놈이 쓴 책이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서울대 등에 등록돼 있으니 이렇게 보람찰 수가 없다"며 "내 인생 일대사건"이라며 뿌듯해했다. 그는 경기도 양평에 우표전시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장롱에 넣어두고 혼자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널리 알려서 청소년들이 역사의식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소명" 때문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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