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유서 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원심이 소멸시효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30일 강씨와 강씨 가족들이 국가와 사건 담당 검사·감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른바 '한국판 드레퓌스'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 뜨겁던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가 정권 퇴진을 외치며 서강대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강씨는 후배였던 김씨의 분신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 6개월 형을 확정받았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 필적이 같다는 감정 결과도 근거가 됐다.
이후 16년 만인 2007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유서대필' 누명을 벗겨주면서 강씨는 결국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검찰의 재항고와 대법원 심리 지연 등으로 재심은 2012년 10월에야 최종 결정됐다.
이후 강씨 등은 국가와 당시 수사 책임자들인 수사 담당 강모 전 부장검사, 신모 전 수석검사, 국과수 문서감정인 김모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위법한 필적 감정에 따른 국가와 감정인 책임을 인정했지만 수사 과정에서의 개별 불법행위는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불법 행위 시기인 1991년경으로부터 24년이 지난 2015년 11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해 장기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장기소멸시효에 대한 규정을 적용해 강씨 측 패소 판결한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는 취지다.
헌법재판소는 과거사정리법에 따른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이나 중대한 인권침해, 조작의혹사건의 경우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데 장기소멸시효 적용이 배제되도록 결정한 바 있다.
이 결정은 강씨 원심 선고 이후 2018년 8월 선고됐으나 선고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에도 그 효력이 미친다.
대법원은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 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라고 볼 수 있다"며 "원심은 이 부분에 대하여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해 원고들 청구를 배척했으므로 파기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공무원 개인인 당시 수사 검사들과 국과수 감정인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배척한 원심은 수긍할 만하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